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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세이

[책 리뷰] 양양

by 인생은 하나의 필름과도 같으니. 2025.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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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오랜 비밀이었던 딸의 이름을 꺼내들다.

 

 

화제의 다큐멘터리 <양양>에서 못다 한 마음, 그리고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의 내용뿐만 아니라 비하인드,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까지 모두 실어내었다. 그뿐만 아니라 고모와 자신,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조금 더 촘촘하게 다룬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밤, 저자 양주연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자살한 누나가 있음을 알렸다. 뒤이은 말이 주연의 마음을 흔들었다.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 양씨 집안 여자들은 모두 불행했으니까. 그녀는 방황하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고 했다. 죽음을 결심할 만큼 힘들었지만 실행에는 옮기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 후 보지도 못했던 고모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막연한 호기심일까. 두려움일까. 당연하게 불행한 존재는 없다. 양씨 집안의 여자들은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모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다.

 

제목 '양양'은 고모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녀가 나름대로 만들었던 그녀를 호명하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물론 양씨 집안의 여성들을 상징하기도 했고, 양지영과 양주영을 합친 말이기도 했다. 다른 이들은 이 이름을 듣고 물이 흐르는 느낌, 익명의 여성 같다고도 했지만, 각자의 느낌을 열어줄 수 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촬영하면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은 항상 자기 삶이 특별하지 않다고 했다. 특별한 삶은 무엇이고 특별하지 않은 삶은 무엇인지 고민하다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가 담고 싶었던 건 특별한 사람을 다루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이 특별한지를 묻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고모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모를 어떻게 카메라에 담을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막막했으나 질문하는 영화로 구성하기로 한 것이다.

 

고모의 삶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우리 집안의 비밀을 들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고모를 들여다보기 전에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는데, 할머니는 평소 정상성과 평범한 삶을 강조했다고 했다. 그 생각이 설명될 수 없는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하고 의문을 품었다고 했다. 그래서 더더욱 고모의 시간을 되찾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고모에 관해서 물어볼 용기는 없었지만 이름과 얼굴만이라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사진첩을 펼쳐보게 되었다고 한다. 고모를 닮지 말아야 할 존재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설득해 인터뷰하며 가족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으나 특별하게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고모의 주변 사람들에게 찾아가 아무도 알지 못했던 고모의 삶을 조금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사진으로만 남았던 어린 시절 고모의 이야기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고모의 이야기로 확장되며 '양지영'이라는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고모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과거가 가까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고모의 죽음의 이유를 추적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고모의 목소리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고모가 이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좋아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날의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고모의 시선과 목소리로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했다.

 

카메라 뒤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양양>이라는 영화의 진정한 연출 의도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누군가는 망자의 잊힐 권리를 부정하는 이야기라고 말하며 불편해할 수 있을 지점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타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잊힌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또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그녀의 이름을 가족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에 다시 새겨놓음으로써 그 존재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저자는 그 과정을 거치며 사랑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가 다른 새로운 길목에 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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