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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책 리뷰] 마지막 방화

by 인생은 하나의 필름과도 같으니. 2026.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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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눈길을 끈다. 노란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독특하고 감각적인 색 조화와 중간에 그려져 있는 절취선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게 만든다. 뜯는 곳을 따라 종이를 뜯어내면 그 속에 숨겨진 주인공의 진짜 내면이나 감춰진 사건의 진실이 드러날 것 같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노란색 인물과 그 뒤의 검은 그림자(또는 타버린 형상) 사이를 가로지르는 절취선이 정상적인 일상과 파괴적인 충동 사이의 위태로운 경계를 드러내고 있다. 독자가 직접 표지를 '뜯는' 행위를 상상하게 함으로써 소설 속 방화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옴니버스 형식의 추리소설이면서 성장 소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기묘한 조합은 각 사건의 단서를 발견했느냐면서 사건마다 조금씩 절취선을 뜯듯 주인공의 내면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소설은 미스터리 범죄 수사극으로 다채롭게 이야기를 펼쳐낸다. 한 강력계 형사의 시점으로 수사 과정을 보여주는데,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강력계 형사 함민은 셜록 함스라고 불릴 정도로 사건을 잘 해결해 나간다. 그런 그에게도 단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의 충동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지기 시작한다. 그의 충동은 '방화'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사건을 기점으로 자책과 자기혐오가 달라붙어 방황에 대한 충동은 거세졌다.

만약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충동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쉽게 해결이 되는 사건도 있었지만, 정황이 너무나 명확해서 뭔가 수상한 낌새를 가지고 있는 사건도 있었다. 수사가 미궁에 빠질 때마다 끓어오르는 충동은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유능한 팀원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게 한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형사가 스스로 파괴적인 범죄(방화)의 유혹을 느끼는 역설적인 상황은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충동의 근원은 1993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함민은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불을 지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함민은 동급생들과 함께 대전 엑스포에 가게 되었고, 모두가 잠든 밤 담배를 피우다 성냥불을 드럼통에 던지게 된다. 불이 거세게 타오르며 숙소로 옮겨붙는 모습을 본 함민은 친구들을 구조하고 큰 화상을 입게 된다. 학교에서는 '영웅'이라 칭송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죄책감으로 남는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30년 만에 대전에 방문하고, 그곳에서 당시 화재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형사와 마주한다. 함민은 그곳에서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될까.

악마 같은 본성이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는 그러지 않았다. 죄책감이나 자기혐오라는 게 얼마나 큰 그림자를 내고 자기 자신을 악마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진다. 그 검은 그림자는 악마가 아니라 죄책감이 만들어낸 비대한 그림자였다. 그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매우 어려웠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도움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의 마음이다. 자기 자신을 비로소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은 매우 빛났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각자의 절취선을 품고 살아간다. 그 선을 뜯어냈을 때 마주할 '진짜 나'는 생각보다 그리 괴물 같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로를 건네고 있다. 이런 따뜻한 추리소설은 처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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