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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책 리뷰]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by 인생은 하나의 필름과도 같으니. 2025.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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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제목부터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 받았다고? 판타지 소설인가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넘겨보니 저주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구성했던 이야기에서 비롯된 일들을 저주라 치부하며 그 벽장에 자신을 가둔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소설을 소개하는 글 중에 "내가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지 않는 법, 그것은 내가 속한 세상을 점점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았다. 외려 저주 속에 머물다 보면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둠 속에서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외부의 적이 있어야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환각이라 할지라도 그 거짓말이 사람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저주받은 희망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죄책감이 만들어낸 결과가 어떤 모습일까. 그 위험한 희망이 축복인지 더 큰 저주인지에 대한 답은 이 책 속에 있다.

이 이야기는 정말 사소한 저주에서 시작된다. 한 초등학생에게 해리포터에서 저주받은 것처럼 우식 또한 저주받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인생의 고민이 탈모에 국한되어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근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단하게 악착같이 살아가야 겨우겨우 유지할 수 있는 삶이었다. 어린 시절 생각했던 역사적 사명?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해나 안 끼치고 살면 다행이지 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그런 우식에게 어쩌다 세 번의 자가 격리 명령이 떨어지며 의도치 않게 폐를 끼쳤다. 바이러스 취급을 당하며 사회적 낙인을 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우식은 휴식 기간 여러 가지 일을 하던 중 휴먼북인 <휴먼북 조기준>이라는 책을 읽게 된다. 격리 전문가 조기준? 이보다 더 시의적절한 책은 없는데, 왜 최저가 할인 북 코너에 분류된 걸까? 그렇게 열람하게 된다. 소년의 과거와 우식의 현재가 교차하며 뭔가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는 가전 수리 서비스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 마태공과 함께 온라인상의 흑역사를 지워주는 디지털 세탁소 ‘더 빨래’를 운영하고 있다.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늘 윤리적이지는 않았고, 공공의 선에 부합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때론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일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기도 해서 그것을 외면하고 이득을 얻기도 한다. 결국에는 이 세탁소가 향하는 길이 도움이 필요한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명으로 합리화하기도 했다. 어딘가 어색한 조기준의 이야기, 마태공 선배의 전국 각지 사과 소동이 벌어지며 궁극적으로는 저편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나갈 퍼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길을 벗어날 용기가 없던 우식에게 사실 팬데믹이라는 위기는 ‘변화의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소설은 질병에 얽힌 사람들과 과거의 죄책감에 대한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어 더욱 흥미를 유발한다. 비극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잘 팔리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처럼 자극은 언제나 손쉬운 선택지다. 나도 그와 같은 글을 써보려 시도도 해봤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에서 우러나지도 않았고 손끝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내가 쓰려고 했던 건 자극적인 것에 반응을 유도하는 글이 아니라 나의 솔직하고 진솔한 마음을 담은 글이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누군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자극적일까. 그래서인지 소설은 무엇이 진실인지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 소설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우리가 그 어두운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 사실에 대해 불편해하며 외면하는 척하면서도 끝내 그 이야기의 전말을 알고 싶어 하는 우리의 모순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때론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나의 휴먼북은 어떤 이야기로 채워져 있을까.’ 등급으로 분류되는 건 꺼림칙하지만 그래도 알고 싶어진다. 어쩌면 그 속엔 내가 모르는 ‘내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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