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보지 않으면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다. 누군가의 의뢰를 해결해 주면, 의뢰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어떤 비밀 채팅방에 대한 소설인데, 심지어 청소년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첫 장을 펼치고 페이지를 넘어가면 넘어갈수록 충격적인 장면들이 잊히지 않았다. 그 소설의 정체는 바로 제4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 <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이다.
해결 사이트는 일주일에 단 두 번 열린다. 다른 사람의 의뢰를 들으면 다음 차례에는 자신의 의뢰를 요청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작은 심부름부터 범죄까지 다양한 의뢰가 있었지만, 겉으로 보기엔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즉각 그 공간에서 쫓겨나게 된다. 문제해결 사이트의 가장 큰 문제는 모두가 범죄에 연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성에 기반한 사이트이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과 불안, 증오를 조금 더 증폭시킬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이 이전에 했던 행동을 문제 삼아 ‘협박’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외부에 알려지는 일도 드물었다.
또한, 범죄 행위에 대해 일부는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죄의식이 사라질 정도의 자기합리화가 가능한 공간이었다. 왜? 남들도 다 하니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을 해하는데 거리낌이 없고 자신의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끔찍하지 않은가. 그것이 설령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의뢰를 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설은 비밀 채팅방과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보여주고 있다. 저게 만약 현실이라면 소름이 끼칠 정도의 현실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이트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거리낌 없었다. 주변의 친구를 해하기 위해 그 앞에서는 악의를 숨겼다. 청소년들은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단계에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보통 가지게 된다. 그것이 어긋나게 되면 단순한 열등감에서 그치지 않고 그릇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소설은 해결 사이트가 어떻게 됐는지, 범인은 누구인지, 그동안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조사가 되고 있는지 나오지 않는다. 큰 아쉬움이 남았다. 다만, 그 일을 마주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의도적 불편함을 남긴다. 뒷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음으로써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의 욕망 실현은 지극히 사적인 의뢰일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그릇된 행위에도 동참하지 않아야 한다.
읽는 내내 나는 묘한 무력감을 느꼈다. 나를 겨냥한 누군가의 의뢰가 올라온다면 나는 어떤 대처를 할 수 있을까. 혹은 그런 사이트를 접하게 된다면 그 시스템에 동참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잘못된 일을 하고도 그릇됨을 느끼지 못한 채 휩쓸리는 모습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도덕적 가치의 붕괴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사적인 복수, 개인적인 호감이 스토킹 피해 범죄, 학교폭력과 같은 범죄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던지는 불편한 질문은 절대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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