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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세이

[책 리뷰] 파리에서 만난 말들

by 인생은 하나의 필름과도 같으니. 2023.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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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의 20년 동안 만난 말들을 한자리에 모은 목수정 작가의 책 <파리에서 만난 말들>은 무수한 말이 쌓인 기억 속에 손을 뻗어 그동안 살아왔던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다. 겉의 이미지로 인해 편견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겉의 이미지와 속에 내포된 의미의 차이를 마주하며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그 언어 속의 사람들을 담고 있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파리가 담겨있어 책을 읽으면 마치 거리를 거니는 것처럼 생생하게 언어의 향취를 느낄 수 있었다.

 

 

목차

 

1부 달콤한 인생을 주문하는 말

Doucement(두스망: 부드럽게)-아가의 머리를 매만지는 손길 같은
Vivre(비브르: 살다), Survivre(쉬르비브르: 생존하다)-생을 누릴 권리를 위해
Scrupule(스크뤼퓔: 세심함)-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
Il faut oser(일 포 오제: 감히 시도해야 해)-거리의 부랑아를 구도자로 바꾼 힘
Apéro(아페로: 식전주)-일상의 천국을 여는 세 음절
Il fait beau(일 페 보: 아름다운 날씨로군요)-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찬미하는 감각
Envie(앙비: 욕망)-사소하고 경이로운 프랑스식 사치
Pain(빵)-달콤한 것은 빵이 아니다
La terre(라 테흐: 지구)-모든 생명의 어머니
Homéostasie(오메오스타지: 항상성)-인간이 우주와 하나가 될 때
Bonjour(봉주르: 안녕하세요)-순간을 어루만지는 온기
Résilience(레질리앙스: 탄성, 복원력)-바퀴 아래 짓눌렸던 인생일지라도
Bouder(부데: 삐지다)-애정 결핍의 신호

2부 생각을 조각하는 말

Épanouissement(에파누이스망: 개화)-자아가 만개하는 경이의 순간
Exception culturelle(엑셉시옹 퀼튀렐: 문화적 예외)-칸영화제에 울려 퍼진 일성
Laïcité(라이시테: 정교분리 원칙)-공화국을 완성한 네 번째 가치
Transgénérationnel(트랑스제네라시오넬: 세대를 가로지르는)-조상이 남긴 업보
Lapsus(랍쉬스: 실수)-무의식을 드러내는 혀
Belle-mère(벨메르: 새어머니, 시어머니…)-나의 아름다운 새어머니
Vie par procuration (비 파르 프로퀴라시옹: 대리 인생)-왜 한국 드라마엔 늘 복수극이 등장하는가
Il s’est eteint(일 세 에탱: 그의 생명의 불이 꺼지다)-단선적 세계와 회귀하는 세계
On s’en fout(옹 상 푸: 아무도 관심 없어)-해방과 냉소, 두 얼굴의 언어
Pardon(빠흐동: 실례합니다)-갈등을 무장해제 하는 만능 에어백
Recul(르퀼: 뒷걸음질)-숲을 조망하기 위해 물러서는 지혜

3부 풍요로운 공동체를 견인하는 말

Grève(그레브: 파업)-풍요를 분배하기 위한 시간
Oligarchie(올리가르시: 과두정치)-우리의 삶은 그들의 이윤보다 소중하다
Solidarité(솔리다리테: 연대)-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으므로
Du coup(뒤 쿠)-전염병처럼 번지는 말
Dénoncer(데농세: 일러바치다), Accuser(아퀴제: 고발하다)-나는 고발한다
Austérité(오스테리테: 긴축)-저항을 잠재우는 최면의 기술
Le doute(르 두트: 의심)-모든 권위주의에 대적할 첫 번째 도구
Sorcière(소르시에르: 마녀)-마녀들은 왜 화형당했을까

 

책 후기

 

언어는 생활이며, 말을 담는 그릇이다. 하지만 언어를 안다고 해서 그 사회를 살지 않고는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 특히나 말의 뉘앙스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건 특정한 나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를 반영하는 언어를 알아야 하고,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그곳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 그래서 20년간 파리에서 느끼고 담아낸 이 책이 더욱 유용하게 느껴지며 미세한 뉘앙스를 느끼게 만들어 준다. 프랑스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역동적 역사의 흔적은 다양한 면모를 통해 드러난다.

 

혁명이 중심이 된 프랑스에는 과거 이데올로기로 인해 억압된 개인의 자유와 욕망이 터져 나왔고 이는 곧 프랑스의 단단한 개인주의의 토대가 되었지만, 한국은 독립부터 혁명까지의 공동체 의식이 국가적 위기와 겹쳐 함께 ‘빨리빨리’ 문화가 정착된 모습이다. 한국은 전체에 중점을 두며 거침없이 나아가지만, 자아에 중심을 두는 프랑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유지하며 여유로움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뛰어다니는 건 오로지 자신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뛰어다니며 익숙해지는 프랑스 어휘는 프랑스의 ‘doucement 두스망 – 부드럽게’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했다.

 

느긋하면서도 개인적이며 삶을 살아가는 프랑스 사람들의 일상과 어휘에서는 그들의 자부심이 가득 묻어나온다. 개인과 공동체를 모두 존중하며 ‘Solidarité 솔리다리테 – 연대’의 따뜻함을 마주하게 된다. 생존을 넘어 살아가는 삶을 위해 끊임없이 ‘Le doute 르 두트 - 의심’하는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전염병이 번지고 전체적으로 달라지는 모습을 통해 더욱 많은 변화를 불러오게 되는데, 그렇게 각박해진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그리고 문득, 책에 나온 프랑스의 어휘처럼 한국에서는 어떤 어휘가 대표가 되어 소개될지 궁금해졌다.

 

P23 비브르는 적극적으로 손을 뻗어 움켜쥐는 삶이며, 고통이든 행복이든 기꺼이 감당하고 내 손으로 빚고 조각하며, 파편이 튀어도 물러나지 않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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