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에 무가치함이 있는가. 그저 우리는 타인의 삶을 판단하고 때론 몰이해로 인해 그 사람의 소멸을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다. 최진영 작가의 장편소설 <원도>는 두렵지만 피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물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어떤 삶을 조명하여 생의 무가치함에 대해 논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묻는다. 이 책은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의 전면 개정판이며 독자들의 요청으로 11년 만에 새로운 개정판이 나왔다고 한다. 이 책을 보면 다자이 오사무 작가의 <인간 실격>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자기혐오에서 시작된 자기변명을 풀어놓는 과정이 겹쳐서 보이기도 한다. 다만, <인간 실격>은 그보다 더 강도도 높고 주인공에 대한 역함이 상상 이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또 다른 느낌이 들기도 했다.
11년 만의 개정판, 그때와 지금의 작가의 말을 비교해서 감상하면 더욱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목차
원도
초판 작가의 말
새로 쓴 작가의 말
상세 이미지
책 후기
그의 마음속에는 작지만 큰 구멍이 있다. 모든 것이 잔존하는 만큼 절망을 손쉽게 빨아들이고 과거와 현재의 통로로서 존재하는 구멍. 그것은 생존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유에 설득력 있는 모습이 되곤 했다. 누구에게도 요구할 수도 없고 어떤 것도 채울 수 없는 서툴고도 어린 결핍은 오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냈다. 구멍을 메웠다 생각했던 알맹이는 실체 없는 허상에 불가했음을 깨달으며 완전히 채울 수도, 비울 수도 없는 ‘무’의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 여전히 믿을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의 이치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지만 계속 자신과 먼 거리를 유지했다.
모호한 기준 앞에 명확한 대상이 나타나며 모든 것이 무너질 듯 아슬아슬했다. 우리는 누구나 완전함을 추구하지만 충족하지 못하는 순간, 열등감을 느끼곤 한다. 그 감정을 타인의 것을 흠모하는 과정에서 온다는 것이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에는 타인의 모든 것이 담겨있지 않을뿐더러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고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모순적이었다. 그의 겉모습에서 드러나는 ‘잘 된’ 모습은 그저 일부일 뿐임에도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원도는 철저한 비교 상대인 경쟁자와 함께 성장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내면의 구멍은 늘 따뜻하던 말을 비수로 바꾸어 놓았으며 그 상처는 벌어져 내면의 큰 구멍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는 가진 것을 뺏기지 않기 위해 타인의 것을 빼앗는 일을 했다. 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를 끊임없이 합리화했다.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데 익숙했으며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큰 저항을 하지 않았다. 분노는 늘 그의 내면에 존재했고 어떤 해소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비난받아 마땅한 그 남자는 왠지 모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내뱉는 말과 기억 속의 불행이 철저히 타인을 배제한 채, 자신의 시선에서 비롯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그 연민에 모순을 느꼈다.
어떤 선택의 차이라기 보다는 마음가짐의 차이로 보인다. 각자의 삶은 출발점도, 아이템도 모두 다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은 오롯이 자신이 책임져야 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탓일까. 꿈꿔 온 것도 바라던 삶의 방향성도 잃은 모습으로서 나타난다. 그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자 죽음을 바라고 또 그것을 소망할 뿐이었다. 간절히 원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랑해 주길 바라는 처연함에 절로 마음이 미어졌다. 그의 가정환경은 완전한 불행의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성장 과정이 미친 어떤 영향의 비극은 그가 초래한 것이 아니라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자신의 소중한 삶에 집중했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결말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바뀌지 않는다면 삶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살아 있는 동안의 자유, 죽어야만 얻을 수 있는 자유는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원도는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합리적인 억압에 의해 잘못된 착각을 자신에게 새겼고 거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 또, 선택지는 자신에게 쥐어지지 않았지만 선택은 반드시 나의 몫이 되는 이 세상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망설이게 만들었다. 망설임은 또 다른 선택을 불러왔고 뜻하지 않은 선택은 불행을 불러오기도 했다. 평생을 아마도 불행하다 여겼던 기억은 자기연민에서부터 온 어떤 불행의 기억이었다. 세상이 나의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불행인 걸까. 부정에 의한 깊은 상처는 그 기억에 얽매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기며 이 모든 삶에 큰 파편을 냈다. 엉킨 기억과 잘못된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철저히 자기 생각에서부터 찾아온 어떤 불행은 자신이 만들어낸 참혹한 비극의 모습으로 남아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사랑을 갈구해서, 사랑을 받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원도는 그 내면이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 또 어른의 정의를 끊임없이 좇다 수렁에 빠지고 만다. 끝없는 불안은 자신에게 혼란이었으며 그 혼란은 다시 원도를 불안하게 만들어 불행의 늪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평생을 불행과 살아온 원도는 끝끝내 그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허나 그 불행조차도 뚜렷하지 않다고 여겨졌고 그 미세한 감정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그 무수한 잘못이 자신의 불행을 떨칠 요소로 작용했다면 좀 달랐을까. 끊임없는 의문은 원도를 가로질러 불행이라는 호수에 갇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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