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진 작가의 <가벼운 점심>은 여러 계절이 내려앉아 다양한 사랑을 보여주는 장편 소설이다. 세월의 무게를 짐작게 만드는 쌓인 먼지로 인해 재채기가 연달아 나오지만, 절대 찝찝하지 않았다. 그게 무엇인지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먼지를 톡톡 털어내면 이 책 속의 계절에 담긴 사랑들을 마주할 수 있다.
목차
가벼운 점심
피아노, 피아노
하품
고전적인 시간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
파수꾼
작가의 말
상세 이미지
책 후기
이 무미건조한 따뜻함이 좋다. 어디에서 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명확하게 흔적을 남기는 마음은 그 자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적막 속에 남은 따뜻함은 존재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어떤 문장은 마음 한 켠에 남아있는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감정이 단발성으로 남지 않길 바랄 뿐이다. 불안을 머금고도 계속해서 잔잔함을 유지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때론 사랑의 힘이 바꾸어 놓는 주변의 환경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펼쳐내기도 한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한다는 건 어떤 사랑의 방향인 걸까. 지금의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람의 모습에서 변화한 어떤 모습을 포착한다. 별다른 표현이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아도 막연하지 않을 마음을 글로써 전달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마주해야 할 감정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기존의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의연하게 대체할 수 있는 그 마음만이 남아 있었다. 어떤 행위의 정체성이라면 반드시 행해야 할 감정의 흔적임은 틀림없었다.
책 속의 단편 중에 유독 쓸쓸하게 느껴졌던 <피아노, 피아노>는 마음에 와닿는다. 삶의 무의미함이 밀려오는 책이라고 해야 할까. "외롭고 쓸쓸한 찰나의 계절 속 만개한 사랑과 호젓한 고독의 드넓은 파노라마"라는 문장이 참으로 잘 어울렸다. 여름과 가을 사이의 계절을 표현하면서도 유독 씁쓸하게 느껴진다. 계절은 어떤 특정함에 의해 구분되지 않는 시간에 불과하다. 다만, 지금 내가 서있는 이 땅과 계절로 인한 날씨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무엇을 꿈꾸는지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내릴 수 없는 시간대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부품처럼 여겨지는 이 몸을 이끌고도 계속 살아가는 것에 분노를 느낄 새도 없이 삶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무언가를 인식하기엔 지금 내 위치가 불안하다고 여겨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여섯 편의 단편을 길게 늘여 하나의 장편으로 보고 싶어졌다. 이 책은 마지막을 바라보는 그 찰나에 보는 것들을 마주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글의 형태로 마주하는 기억이란 이 순간들을 표현하는 게 아닐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문장도, 시간도, 사람도 마침표를 찍어간다는 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바라왔던 일도 막상 그 자리에 가까워지면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벼운 점심>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묵직한 저녁 식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p17 떨어지는 꽃잎이나 낙엽을 받으면 그 계절에 사랑이 나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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