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환상을 적절히 섞어 더욱 현실감을 더하는 <나무좀>은 라일라 마르티네스의 첫 소설이다. 이 작품은 스페인의 한 독립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후 16쇄가 매진될 정도로 호평을 받으며 이그노스투스상을 수상했다. 세대를 거쳐 이어진 악순환을 끊기 위한 노력과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소외된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섬뜩하면서도 강렬한 저항의 모습을 마주할 차례이다.
목차
나무좀 · 9
감사의 말 · 194
옮긴이의 말 시간의 복수, 새로운 삶을 향한 여정 ·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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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스페인 산골의 음산한 집. 이 집에는 어둠의 그림자들로 가득 차 있으며 남자들은 죽고 여자들은 결코 떠날 수 없는 저주에 걸려있다. 하지만, 이 집의 저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시선과 말이었다. 얼른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집은 살아있는 존재처럼 그녀들의 발걸음을 방해하며 욕망을 부추길 뿐이었다. 과연 그들은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부정적 감정의 압도감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어 올랐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빠지게 되고, 그 무기력은 세대를 거슬러 학습된다.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도 물론 있었지만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욕망이 서린 집을 진정시킬 방법은 많지 않았다. 소설의 제목처럼 이 집의 근원이 되는 이는 타인을 좀먹고 자라나는 욕망의 산물이었다. 타인의 불행을 이용하여 착취에 용이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이득을 취하는 방식으로 그 비극을 대물림 해왔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오랜 시간 동안 합법적인 폭력을 정당화해 준 제도 중 하나가 ‘가부장제’이다. 이 제도는 권위와 지배 구조를 통해 특정 성별의 억압을 정당화하며, 그 억압은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가부장제는 가족 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폭력과 불평등을 묵인하게 했으며, 또 다른 족쇄를 만들어내어 지속적인 고통을 안겼다. 소설 속에서는 그 고통을 ‘집’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을 이용하여 더욱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착취로 이룩해낸 희생의 산물은 그리 거창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졌으나 절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수많은 고통과 비극이 응축되어 있었으며 이 비극을 나의 손으로 끊어내리라 다짐하는 하나의 생각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오랜 시간 다져진 감옥은 아무리 다짐을 해보아도 결국 ‘욕망’의 굴레로 다시 돌아간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숙이 빠져드는 그 굴레는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악순환을 끊어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의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통쾌한 결말이라 할 수는 없지만 세대에 걸친 악순환을 끊어내고, 마침내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이뤄내는 모습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마냥 귀신의 집, 악령에 대한 소재라 생각해 펼쳐봤다가 사람들의 본성에 섬뜩해진다. 이 소설은 희생된 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착취의 고리를 강조하며, 독자가 불편함 속에서도 깊은 성찰을 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복수에 매몰되지 않고 세대를 거쳐 이어진 악순환을 끊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복수가 아닌, 진정한 해방과 치유를 향한 인간의 고뇌와 성장을 담아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소설은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이 무엇인지 묻고, 그 선택의 무게를 깊이 새기게 만든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가득했지만, 점차 이야기가 흘러가며 그 사이 공백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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