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엣타인 응우옌의 장편소설 <헌신자>는 <동조자>의 후속작이다. <동조자>가 베트남전 직후 베트남과 미국 사회의 이면을 이중간첩인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보았다면 <헌신자>는 보트피플의 베트남의 탈출과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베트남인들의 삶을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삶과 정체성의 혼란을 통해, '무'의 의미를 탐구하고 혁명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을 그린 <헌신자>를 마주할 시간이다.
목차
프롤로그 11
1부 19
1장 21
2장 52
3장 84
4장 118
5장 145
2부 167
6장 169
7장 194
8장 220
9장 247
10장 279
3부 295
11장 297
12장 319
13장 339
14장 371
15장 394
4부 423
16장 425
17장 458
18장 482
19장 514
20장 539
21장 564
에필로그 591
감사의 말 607
책 후기
"무(無)보다 더 진짜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나'는 미국을 거쳐 ‘아버지의 나라’ 프랑스에 도달하게 된다. 자신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나라를 지배하여 고통을 선사하기도 했던 프랑스라는 나라에 '난민'으로서 살게 되며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실제로 식민지배자는 스스로를 신성한 존재로 여겼고 그들을 섬기는 토착민 중개인들은 자신이 사제나 사도라는 환상을 가졌다. 막연하게 심어놓은 선민사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혼란이 가득한 베트남을 떠나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의 모습에서 더욱 잘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것 중 하나는 프랑스를 인식하는 베트남인들의 자세였다. 일부는 프랑스를 우리의 후원자라 여겼고 일부는 여전히 식민 지배자로 여기기도 했다.
베트남에서 남과 북으로 나뉘어 미국이 원하는 전쟁을 치르고 어떠한 성과를 얻었는지 모를 허무함이 팽배해진다. 누군가는 희망을 품었을지 모르지만, 재교육을 받은 '나'는 정체성을 잃고 어떤 의미로 살아가야 할지 길을 잃고 말았다.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 수많은 비하의 단어들은 자신을 향해 있었다. 혁명가가 아닌 난민, 시골 출신의 촌놈, 식민지에서 온 멍청한 조카, 바보 같은 잡종 새끼와 같은 온갖 수식어가 자기혐오를 불러일으켰다. 무엇이 정의이고, 혁명인지 정의 내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프랑스어를 배우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며 자본주의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가장 접하기 쉬운 마약 거래를 통해 자본의 맛을 본 '나'는 슬픔과 허무를 잊기 위해 마약에 중독된다. 중독됐다는 것도 망각하며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과 합리화를 부과한다. 누군가의 죽음과 자신의 마음에 남아있는 죄책감은 갈 길을 잃은 채, 마음에서 맴돌고 있었다. 타인을 속이기 위해 나를 속이고, 사람들을 죽였던 자신의 적을 마음에 되새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았다는 '혁명'에 원망의 감정이 부풀어 올랐다. 마음의 균형이 자본주의에, 마약에 기울며 점차 자신을 망가뜨린다.
"독립과 자유보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인가. 독립과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전무(無)하다. 독립과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무(無)이다."
재교육 시간을 혹독하게 치른 나는 다른 세계로 진입하며 인간이 되는 것만을 열망하고 또 다른 새로움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중간첩으로서 살아온 지난 세월을 잊고서 살기엔, '남베트남의 애국적 반공주의자'라는 고정 배역이 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식민지가 끝난 후 전쟁이 벌어지고 끝났지만, 또 다른 '이념' 전쟁이 펼쳐지며 그 혼란은 '나'에게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불문하고 국가 기구는 억압적으로 기능하여 뿌리가 뽑힌 베트남인들의 혼란을 가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프랑스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순진하고 무해한 아시아인'으로서 살아가야 했다.
냉전의 시대에서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모두가 잘못된 선택을 하며 제3의 선택을 바라게 되었고 그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과 해야 했던 일들을 되돌아보며 '나'는 '무'를 지향하게 된다. '무'의 가치를 논하게 된 것은 모든 것을 놓아버려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의미로 가득한 '무'를 통해 혁명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며 모든 종교와 도덕적 원칙을 거부하는 허무주의자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나'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군가의 동조자이자 헌신자로 평생 자신과 주변을 속이며 살아왔던 그가 무의미함을 느끼면서 찾아오는 현실감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치고 있는 모습을 계속해서 비추는 것뿐이다.
사람은 힘든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고, 어디에도 유토피아가 없음을 알게 되면 끝없는 절망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프랑스에 짓밟히고 미국에 배신당했지만, 미국, 프랑스에서 난민 신세를 지게 된 현실은 참담했지만, 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써 '마약'을 이용하게 된다. 여전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나'에 대해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되며 끝없는 무의미함에 빠지게 된다. 나라는 존재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지는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 가면의 끝에 선 자신을 마주하며 끝을 맞이하게 된다. 그 끝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해진 것을 보면 그게 진짜인지 허상인지 믿을 수 없었다.
끝없이 휘몰아치는 동조자, 아니 헌신자의 말을 들을 때면 많은 감정들이 샘솟는다. 끊임없이 자신의 혁명과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떤 것에도 도달하지 못한 그의 모습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서글퍼진다. 끊임없이 자신의 엄마를 그리워하고 또 사랑하는 그 마음을 어디에도 전달하지 못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허무한가.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는 '무'를 달성했지만 지금 마주한 혼란과 불안은 그곳에서도 마무리되지 못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나라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잃어버리고,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이 수많은 동조자와 헌신자는 수없이 흐르는 '무'에 휩쓸려 버리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p13 우리는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 불필요한 사람들, 우리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p15 우리 대부분이 조국을 떠난 이유는 책임 공산 단원들이 우리에게 앞잡이, 사이비 평화주의자, 부르주아 민족주의자, 타락한 반동분자, 양심을 판 지식인이라는 딱지를 붙였거나, 우리가 그런 사람들 중 하나와 친인척 관계였기 때문이다.
p73 인간 숭배의 위험 요소란, 인간은 결국 자신의 결함 있는 인간성을 드러내고, 그러면 그 시점에 신자는 그 추락한 우상을 기필코 죽이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p81 만약 인간이 되는 대가가 동정을 통해서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라면, 인류 따위가 어떻게 되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p90 누구에게나 동조할 수 있는 사람인 나는 그 무엇보다도 누군가가 내게 동조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p113 즉 국가를 합법화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것을 현실화했어요.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고 싶어 하고, 폭력의 독점을 법이라고 부르며, 법은 스스로 정당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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