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야 야나기하라의 장편소설 <리틀라이프>. 8년 전 출간 되었지만, 최근 화제 되는 이 소설은 어린 시절 끔찍한 학대와 폭력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한 인물인 주드의 이야기다. 2015 맨부커상 ·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작이며 커커스 문학상 수상작이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 월스트리트저널 · NPR · 가디언 · 이코노미스트 외 25개 언론사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이기도 하다.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은 한 남자의 삶이 펼쳐진다.
목차
1부 리스페너드 스트리트 9
2부 포스트맨 125
3부 허영 313
4부 등식의 공리 415
5부 행복한 시절 7
6부 동지에게 299
7부 리스페너드 스트리트 403
감사의 말 429
옮긴이의 말 431
책 후기
대학 동창인 네 친구 윌럼, 맬컴, 제이비, 주드는 각자의 꿈을 가지고 뉴욕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윌럼은 배우, 맬컴은 건축가, 제이비는 화가이고, 주인공인 주드는 변호사로 왠지 모를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겉의 모습과는 다른 행동은 의문을 품게 만들지만 친구들은 주드가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그 까닭을 묻지 않고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서로의 자리에서 성공한 친구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유독 주드는 고통스러워했다. 자신의 신체에 상처를 내고 끊임없는 통증으로 인해 고통받으면서도 그 행동을 반복한다. 그런 주드를 도우려고 애쓰는 친구들, 그것을 거부하는 주드의 모습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며,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운명이라는 힘에 의해 주드의 삶은 파괴된다. 그의 삶을 행복한 불행, 불행한 행복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냉혹함에도 순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드러내듯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은 계속된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견딜 수 있는 일과 그렇지 못한 일들은 명백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자신의 이상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좋았다.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지도 몰랐다. 현재와 과거에서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었던 주드는 희망에서도, 절망에서도 온전한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떠난 후, 불안과 경계심은 삶의 한 부분, 그리고 습관이 됐다. 새로운 인생을 망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재에 만나더라도 사람들은 가까워질수록 과거에 관심을 가지고 그 과정을 나누는 것은 필수였다. 통제할 수 없는 분노와 소음은 그에게 큰 힘을 발휘하고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자신을 해친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지는 불안의 척도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어른이라서 참아야 했고 어른이라 견뎌야 했으며 어른이라서 결정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이 마냥 쉽지 않았기에 그는 타인에게 맞추는 일이 훨씬 쉬웠다. 하지만 그만큼 상대는 그것을 너무나도 잘았고 그것을 이용하며 주드를 망치는 일이라도 주드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러한 비정상적인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만큼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아챈다. 행복 자체가 자신과 관련 없는 일 혹은 과분한 일이라고 생각한 한편, 행복을 쟁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현재 누군가가 한 말이 아님에도 과거의 누군가가 한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15년이라는 세월은 그 크기만큼이나 평생을 좌우할 만큼의 큰 영향을 미쳤다. 더군다나 그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큰 비밀이 되었으며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됐다. 주드의 내면은 상처로 가득했지만, 그 상처를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감추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타인과의 다름을 깨달으며 분명히 다른 자신과의 평범함의 균형을 맞추는 데 한계를 느끼게 된다. 주드의 주변은 주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사람들과 점차 가까워지면서 나누어야 할 사소한 이야기는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자신과 명확히 다른 인생을 살아온 이들과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본연의 자신을 드러낸다면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에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 모습으로 인해 괴로운 자신을 멈추는 것은 힘들었다. 본연의 자신과 사회적 가면의 괴리감을 견디지 못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심지어는 믿음은 무의미하게, 신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
삶을 살아가고 우리가 어른이 될수록 색채를 잃은 비슷한 모습을 한 우리를 발견한다. 누군가는 비슷하게 살아가려 하고 누군가는 그 개성이 사라지는 것을 피하고 경계한다. 하지만 그 행복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름의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에게도 무언의 부족함은 분명히 존재했다. 누군가의 충고에도 자신의 과거만큼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주드는 깊은 관계가 되어도 자세히 털어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한계를 눈앞에서 마주하게 되면서 그 절망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 절망만큼이나 극복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홀로 감당하게 된다. 언젠가는 뱉어야 할 그 말들이 입가에 맴돌지만 내면의 무언가가 주드를 계속해서 막아섰다.
몸에 남은 상처는 증거를 남기고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지만, 마음의 상처는 환영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마침내 찾아온 사랑에도, 현재의 행복에도 버겁기만 한 자신의 삶을 견디기 어려웠다. 행복이 커질수록 과거의 기억이 또렷해지고 현재의 자신을 비난하고 조롱하기 시작했다. 지독하게 지속되는 이 복잡한 굴레에서 제발 벗어나길 빌었지만, 이 굴레는 반복된다. 이 배반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주드의 일생에 이따금 찾아오는 사랑 때문이었다. 그 사랑은 의존이라는 집착을 만들었지만 살아갈 힘을 만들어주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운명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침내 찾아온 사랑과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그 마음이 이제야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이 소설은 괴로운 기쁨의 향연이다. 소설을 보는 내내 이따금 찾아오는 사랑에 울컥하고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그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불행한 그의 생애가 매우 벅차게 느껴진다. 주인공이 느껴야 할 감정 하나하나가 내 마음속에도 콕콕 박힌다. 차마 마주할 수 없어서 외면하고 말았던 불안의 삶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마치 굴레처럼 느껴지다 가도 찰나의 행복에 기뻐했던 작은 기억으로 살아갈 희망을 되찾게 된다. 그가 자신을 동정하지 않길 바라지만 정상, 행복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견디기 힘들었다.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로 불행하지만 한 사람의 15년이 평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소설이었다.
실화처럼 생생한 이 이야기는 멋진 삶을 살고 있지만 비밀을 숨기고 있는 한 인물의 과거가 드러내며 나의 조그마한 기대를 끝내 무너뜨리는 이 소설은 ‘진정한 삶’을 비춘다. 살아 남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하고, 통제하기 위해 자신을 파괴하며 살아왔지만 하나의 희망마저 사라진 이 삶을 끝내 살아가고 만다. 이렇게 눈에서 뗄 수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손에서 놓을 수 없으면서도 무사히 넘기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1권, 2권으로 나뉘어져 있는 분량도 물론 부담이 됐지만 이야기 자체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재는 아니었다. 이렇게 한 남자의 고통스러운 삶을 비춘 소설을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무엇을 느껴야 하고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보잘 것 없는 삶은 없다는 것? 잔인한 이야기 또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무척이나 잔인하고 버거운 주드의 삶을 지켜보며 도무지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인간에게 상처받고 인간에게 사랑 받고, 인간에게 상처를 주고 인간에게 사랑을 건네는 이러한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모호함에 도무지 적응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게 된다. 사람이라 칭할 수 없는 이들에 의해 도무지 삶이라 부를 수 없는 삶을 살아가던 주드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작지만 행복할 수 있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그런 희망찬 생각을 가지다가도 씁쓸한 결말을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너무 가혹한 소설이기에 그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견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추천해주고 싶지 않다.
67p 하지만 지금은 자기 실현의 시대다. 인생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아님일에 눌러앉는다는 것은 의지 박약에 그렇지 않은 선택이다. 언제부터인가 운명 같은 것에 굴복한다는 것이 고상한게 아니라 비겁함의 지표가 됐다. 69 오로지 이곳에서만은 자기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에 대한 믿음은 변명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2권 289p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엾은 사람들, 자기도 모르는,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다 감싸 안는 것 같은 슬픔이었다. 매일매일이 너무나 힘들 때에도, 상황이 너무나 비참할 때에도, 사방에서 사람들이 살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생각하면 느끼게 되는 경탄과 경외심이 뒤섞인 그런 슬픔이었다. 인생이란 너무 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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