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는 크게 4가지의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짧은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통해 여러 가지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묵직함을 가졌다.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이야기라서 더욱 흥미로웠다. 읽을 때도, 읽고 나서도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목차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匠人) 뮈사르의 유언
문학의 건망증
책 리뷰
<깊이에의 강요>
한 평론가가 젊은 여성 화가에게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라는 말을 한다. 이틀 후 평론가의 비평이 실리며 그를 동조하는 이들로 인해 그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되돌아보게 되고 ‘깊이’라는 단어에 빠져든다. 직접적인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기보다는 소모적인 소비로 인해 이 화가는 그 순간부터 단어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져 단어의 허상에 빠져들게 된다. 어떤 것이 문제인지,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이 나왔는지 알지 못한 채, 자신이 해야 할 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점차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뉴스와 가십거리의 중심이 된 그녀에게 이들은 ‘거듭’이라는 말을 붙였다. 이 상황을 결국에 이겨내지 못하면서 비극으로 이어지는 결말을 맞이한다.
책의 제목과 같은 이름을 한 <깊이에의 강요> 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깊이'라는 말에 한정 지어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지만 개인의 문제라 치부할 수 없는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인상 깊었다. 평가는 의도와는 관계없이 당사자에게 속박된다.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항상 말의 무게감을 느끼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동조하던 이들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지만 나에게 책임감과 의무는 지니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중심을 지켜야 나 자신 또한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개인의 일이라 치부되는 현실이 우선적으로 문제가 되겠지만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고, 또,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려운 현대 사회에서는 나의 중심을 지켜야 나 또한 살아남을 수 있다. 타인은 나 자신을 판단하게 해주는 일부의 평가일 뿐이고, 깊이는 평생에 거쳐 스스로 파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승부>
젊은 청년이 마을의 체스 고수 '장'에게 대결을 신청하게 된다. 그에 대한 정보가 없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위대한 천재적인 재능과 비범한 인물이라 여긴다. 사람들은 체스 고수를 격파할 기적을 은근히 바랐다. 천재적인 체스꾼이 아님에도 모두가 '장'에게 한번쯤은 그에게 졌기 때문이다. 간계한 술수를 통해 상대방을 지치게 하고 분개하게 만들며 증오심을 품게 하는 사람이었다. 젊은 청년의 수가 특별하지 않았음에도 감탄하고, 그가 놓는 수에는 목적과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대담하고도 용기 있는 젊은 청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반면, 고수의 수는 뻔하고도 진부하며 예상이 가능하다 치부했다. 장은 자신이 분명 이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분위기는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이어지게 된다. 무난히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괜스레 주눅 들어 진행하지 못하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젊은이는 졌고, 그것도 모자라 무례하고 상스러운 행위를 했다. 바로 킹을 쓰러뜨리고 자리를 떠난 것이었다. 구경꾼들은 그 경기가 끝나자마자 떠나버렸고, 장은 승리했음에도 패배감을 느끼면서 체스를 그만두게 된다.
제멋대로 체스를 두고도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청년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집착을 마주하게 된다. 무엇을 위해 승리도 패배도 아닌 이러한 승부를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구경꾼들은 지극히 타인이지만 그들이 건넨 말과 분위기로 큰 영향을 미치고는 한다. 자신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다를 때, 느끼는 불안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많이 닮아 있다. 다양한 삶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자연스레 일반적인 삶에 순응하게 되는 모습이 그러하다. ‘평균’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려울뿐더러 나와 맞지 않으면 그것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저마다 다른 역량과 재능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 가지 요소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 그것에 쉽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무섭지 않고 보통의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깨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장인 뮈사르의 유언>
성공한 보석세공사인 뮈사르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일대기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자신의 정원에서 돌조개를 발견하면서 세계와 인간이 점점 돌조개로 변하여 석화되어 간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세상은 조개와도 같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에게도 저주가 내려진다. 몸이 돌처럼 차츰차츰 굳어가는 병에 걸리면서 자신이 그렇게 된 연유를 유언으로 남긴다. 그 이유를 밝혀낸 사실 뿐만 아니라 그 깨달음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그 병은 더욱 가속화된다.
그는 경제적으로 부유했으나 더 이상 금과 보석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의미가 없다고 느꼈던 뮈사르는 서적과 학문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에서 온 것일까. 그의 집착은 조개로 옮겨가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세상에 갇히게 되고 타인과의 소통도 자연스레 사라진다. 그가 굳어버린 돌조개가 된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격리되고, 타인과 분리되며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구간이었다. 앞의 이야기들과는 다르게 적절한 균형을 통해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소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의 건망증>
어떤 책이 내게 감명을 주고, 인상에 남아 마음 깊이 새겨지고, 송두리째 뒤흔들어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거나 지금까지의 생활을 뒤바꾸어 놓는가의 질문을 건넨다. 하지만 그 물음도 잠시 어떤 책을 읽으며 그동안 쌓아왔던 생각들이 무너지고 만다. 읽어도 읽어도 알 수 없는, 또 기억나지도 않는 문장을 읽는 일이 무의미한 일인걸까. 노력 자체가 헛되다는 것에서 오는 체념의 파고에도 책의 미묘한 변화가 분명 있을 것이라 믿게 된다.
개인적으로 매우 공감되는 글이었다. 분명히 기억에 남는 문장이라고 남겼음에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다시 봤을 때 같은 구간에서 똑같은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그 책을 다 읽었다는 착각일지 몰라도 그렇다고 해서 이 문장들을 읽는 것들이 무의미한 일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삶을 한번에 변화시킬수는 없어도 조금씩 스며드는 일이라 몸으로 느낄 수 없는 일일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이 모든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생각에서 나오는 조그마한 반론일지라도 독서는 계속 되어야 한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넓은 세상을 가지고 있고, 알고 있는 확신도 희미해지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오만은 금방 그 밑천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끊임없는 배움의 추구를 통해 조금씩 내 안의 무지를 앎으로 바꿔나가는 노력의 과정에서 <문학의 건망증>은 조금씩 사라지지 않을까. 이 소설은 아마도 문학의 힘을 잃어가는 현세태를 미리 전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스쳐지나간 문장에 불과한 책 속의 문장들이 뇌리를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결론
파트리크 쥐스킨트 작가의 책은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로 처음 접했다. 독특한 이야기만큼이나 사람을 끌어당기는 문체는 제목처럼 매혹적이다. 이번 이야기 또한 매우 매력적이었다. 어떤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미리 단정할 수 없었다. 결론을 낼 수 없는 일은 우리의 삶에도 마찬가지였다. 정해진 답이 없음에도 찾으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저 무의미한 몸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각자의 정해진 이야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해석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개인의 삶을 타인이 무슨 수로 함부로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저마다의 묵직함과 삶을 관통하는 통찰력을 꼭 느껴봤으면 좋겠다. 자신이 내린 답과 다르다는 게 틀린 것은 아니니, 다른 사람들과의 해석을 비교하면 더욱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인상 깊은 구절
p71 그런데 이런, 〈아주 훌륭하다!〉라고 긁적거리기 위해 연필을 들이대자, 내가 쓰려는 말이 이미 거기에 적혀 있다. 그리고 기록해 두려고 생각한 요점 역시 앞서 글을 읽은 사람이 벌써 써놓았다. 그것은 내게 아주 친숙한 필체, 바로 내 자신의 필체였다. 앞서 책을 읽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오래전에 그 책을 읽었던 것이다.
p75 그러나 혹시 -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해본다 - (인생에서처럼) 책을 읽을 때에도 인생 항로의 변경이나 돌연한 변화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일 수도 있다. 의식 깊이 빨려 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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