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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 & 드라마 원작 소설

[책 리뷰] 살인자, 마녀 또는 아그네스

by 인생은 하나의 필름과도 같으니. 2024.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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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살인자, 마녀 또는 아그네스>는 아이슬란드에서 마지막으로 사형된 인물, 아그네스라는 인물의 실화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영화화를 확정하여 제니 로렌스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소설을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저자인 해나 켄트가 아이슬란드 교환학생 시절에 아이슬란드 최후의 사형 집행이 이루어진 장소에 가게 되면서 아그네스에 대한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외딴곳의 이방인으로 외로운 생활을 하던 저자는 아그네스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만나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아그네스의 이야기를 듣고, 인간 아그네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마녀로 통했던 아그네스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살인을 정말 저질렀을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소설이라고 한다.

 

목차

013 프롤로그
015 살인자, 마녀 또는 아그네스
500 에필로그
503 이야기가 끝난 후에


책 리뷰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 한 농장에 구금된 죄인, 아그네스 마그누스도티르. 두 사람을 살해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기독교인의 농장에서 수감된다. 그들의 농장에서 노역하며 죄를 뉘우치라는 것이었다. 물론 당사자였던 이들은 흉악한 범죄자가 자신의 집에 온다는 것이 매우 꺼림칙했다. 그렇게 실제 만나게 된 아그네스는 자기 생각과는 아주 달랐다.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데다가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그녀가 사람을 죽였다고는 믿기 어려웠다. 그렇게 사형의 처분을 기다리는 동안, 아그네스는 자신이 지목한 토티 목사와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


촛불처럼 아슬아슬한 그녀의 삶의 이야기에 조금씩 젖어 들기 시작하는 이들은 연민과 동정의 시선을 건넨다.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만으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완전한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한다. 아그네스가 말한 것처럼 아무리 조용히 지내도, 세상이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무기력함과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금방 알아챌 수 있게 된다. 신분이라는 거대한 벽은 쉽게 이야기를 덧붙이고 ‘마녀’라는 이름으로서 죄를 씌울 수 있는 요소로 작용했다 분명 이러한 체계가 허술하지만, 그들 사이의 믿음은 너무나도 확고했기에 허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녀와 재판에 대한 문구를 보자마자 떠올린 건, 마녀사냥이라는 단어였다. 무고한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이단 심판’을 통해 대량으로 학살되었던 집단 광기의 역사. 이 소설은 마녀사냥과는 다르지만 이성적 판단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종교라는 믿음은 사람에게 큰 힘과 용기를 건넨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그 말을 남용하여 자기 뜻대로 해석한다는 큰 단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르게 작용하는 사회 제도의 부조리함과 옳고 그름의 판단을 타인에게 맡기는 사람들의 단편적인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신분에 의해 가려지고 한계를 결정짓는 일들은 한 사람의 희생이 아무렇지 않은 듯 가벼이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도, 신뢰를 유지하는 것도, 감정을 감당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왜 그러한 어려움은 유독 아그네스에게 가혹하게 다가왔을까.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그를 너무 사랑한 죄뿐일 것이다. 그렇게 아그네스의 목소리는 주변의 인물뿐만 아니라 독자가 그녀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거칠 수 있게 돕는다. 그녀의 목소리가 세상에도 닿기를 나도 모르게 바라게 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어 아쉽지만, 아그네스가 지키고 싶었던 사랑의 온기만큼은 명확하게 느껴진다. 나의 이해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만 한 명이라도 그녀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어디에서도 자세히 들을 수 없는 그날의 진실을 정말 알고 싶어졌다.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한 여자의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사무치는 외로움에 빠져들게 만든다. 어디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지역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긴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낯설게 여겨졌지만, 점차 빠져든다. 아그네스에서, 마르그리에트, 티트까지 자연스레 옮겨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책을 보는 내내 느끼게 된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만큼 명확하고, 명확한 만큼 더 마음이 아팠던 소설이었다. 전개 구조가 답답했지만 한 사람의 사랑으로 남고 싶었던 한 여자의 감정만큼은 제대로 잘 녹아있었다.

인상 깊은 구절


171p 그건 공정하지 못해요. 사람들은 남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안다고 판단할 뿐, 정작 당사자의 이야기는 들어주지도 않죠. 우리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려고 해도, 이 계곡에서는 실수를 잊지 않아요. 아무리 잘하려고 노력해도요. 내면에서 아 무리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고 외쳐 도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결정되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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