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쉐는 대만을 대표하는 작가로 25살, 금기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작품으로 대만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며 등장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는 대만의 중견 작가로 소설 <마천대루>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출간했다. 2020년에 첫 방영된 드라마 <마천대루>의 원작 소설인 만큼 더욱 기대됐다. <마천대루>는 실제로 8년간 거주했던 타이베이의 한 고층 빌딩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한 작품이라고 한다. 300명이 거주하는 초고층 빌딩을 타이페이라는 도시의 축소판으로 그려내기 위해 다양한 직업, 배경, 나이의 인물들을 창조했다고 한다.
고층 빌딩 속 타이베이에서 주거가 지니는 의미, 빈부격차뿐만 아니라 타이베이 드림을 꿈꾸며 각지에서 올라와 성공했거나 좌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에 넣었다. 살인사건을 다룬 소설이지만 소설의 중심은 범인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벌,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주변 사람들의 인생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소설인 만큼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소설의 전개는 다소 특이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범죄소설은 대부분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패턴의 전개를 택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경계를 확실히 하며 마천대루라는 건물 속 인물들의 분위기를 읽도록 만든다. 그리고 메이바오라는 인물이 사망한 후 주변 사람들을 탐문 수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메이바오’라는 사람의 윤곽이 드러나지만, 그것이 그녀의 전부는 아니었다. 메이바오를 사생활이 난잡한 악녀 취급하는 대중적 시선과는 별개로 그녀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이들은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긴 호흡이지만 더 생생하게 사람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세밀한 묘사가 인상 깊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구구절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어떤 변명이나 자기합리화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사연이 이해가 갔다. 있지만 각자가 살아온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힘겹게 몸부림치며 살아온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택과 행동을 옳고 그름으로 재단할 수 없는 만큼 나 또한 주변 사람들을 쉽게 단정 짓거나 재단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 속 세계에서는 단순히 범죄나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돈은 생존의 수단이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자신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풍족해지고 화려해질수록 외적인 조건으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을 점점 더 잃어가며 초라해진다. 분명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메이바오라는 인물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들의 고독함에는 ‘가난’, ‘돈’, 그리고 ‘욕망’이 얽혀 있었다. 끊임없이 충족되지 않는 공허함은 어디에서도 채울 수 없었기에 고독은 깊어져만 간다. 누구에게도 마음 붙일 곳이 없어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허공을 맴돌고 고독한 그 모습이 화려한 외부의 모습과는 다르게 고통스러운 내부를 관통하는 모습이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가 되지만, 돈에 얽힌 욕망이 사람들을 괴물로 만든다. 진정성을 잃은 사회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존재하는 이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인간은 지극히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 이외의 사람에 대해서 자신만큼의 관심을 쏟아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랑은 그 불가능한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그만큼 입체적이고 어려운 존재인 인간의 다양한 면모는 평생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다. 한 사람에 대한 생각이나 편견은 그만큼 고정될수록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가까운 존재라 할지라도 타인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망각하고 깨닫기를 반복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의 삶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아야 하며 잘못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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