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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 & 드라마 원작 소설

[책 리뷰] 딸에 대하여

by 인생은 하나의 필름과도 같으니. 2024.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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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는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된 소설이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시선이 돋보인다. 엄마의 이야기, 그린과 레인의 이야기, 젠의 이야기로 크게 3개로 나뉘어져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미랑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가 2024년 9월 4일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CGV상,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 CGK촬영상, 관객상,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을 인정 받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vTmsEnFeDI

 

 

 

작가의 말

소설을 쓰는 동안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해라는 말속엔 늘 실패로 끝나는 시도만 있다고 생각한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소설도 끈질기게 지속되는 그런 수많은 노력 중 하나가 아니었는지.

 

목차

 

딸에 대하여
작가의 말
작품 해설_실은, 어머니에 대하여 /김신현경(여성학자)

 

 

책 리뷰




현재의 자신, 과거의 청춘, 미래의 죽음.



특별한 일이 아니면 연락이 잘 되지 않는 딸 아이. 반면, 나이가 드니 소화도 잘되지 않고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상실을 느끼게 된다. 젊은이들이 들어서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자 그들이 자신에게 던질 불쾌감이 문득 두려워진다. 그리고 언젠가는 딸애가 도달할 나의 시간, 엄마의 시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달라지는 세상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을 반복하며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딸애에게만큼은 자신이 들었던 수많은 질문들을 그대로 던질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찾아와 목돈을 빌려달라고 말한다. 모른척하고 싶었던 딸의 사생활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적당히 순응하고 삶에 적응하며 살면 될 것을 나에게 상관없는 일을 해서 왜 불이익을 받는걸까? 딸애의 옆에 있는 친구와의 관계도 한때의 치기 어린 사랑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팽배해지는 가운데, 보고 싶지 않았고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딸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도움을 구하러 와놓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엄마에게도 스며들게 하는 모습이 불편하게 여겨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부모세대의 시각을 제대로 이해하려 들지 않고,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주길 바랐던 우리 세대의 이기심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부모세대 또한 자식세대의 의견을 반영해주지 않았다. 자신의 바람대로 자라길 원하고, 자신의 꿈을 투영했던 그 마음이 한 인격체로 존중해주지 못하는 것으로 비친 것이다.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포용하는가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젠이라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으면 했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눈에 드러나는 적의, 혐오, 멸시, 폭력, 분노 무자비가 잔뜩 묻어나오는 그 공간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도, 타인의 문제에 저렇게 나설 수 있는 것도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나의 문제이자, 딸의 문제가 된 이 순간에서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위치를 이제 선택해야 할 순간이 왔다. 많은 이, 나를 포함한 이들이 외면한 문제는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엔 딸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닮았다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된다. 정형화된 세상에서 변화를 위한 자유로운 움직임이 자신에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딸의 삶을 이해하고 걱정하는 것도 이제는 자신이 몫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딸에 대하여>는 서로를 이해하는 결말을 맞이하는 소설이 아니다. 내가 엄마의 입장이었어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독립을 해놓고 다시 돌아와 마음대로 행동하는 모습이 더욱 설득력을 잃었다. 아마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딸은 엄마를 이해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소설에서는 완전한 이해로 마무리 짓지는 않는다. 그것을 강요해서도 안 되는 것이고, 당연한 것도 아니다.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에 대하여 엄마는 이렇게 생각했다면 엄마에 대하여 딸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자신보다 더 나이든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이 나라의 죽음에 대한 예의가 얼마나 형식적인가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사람이 소모적인 존재라면 일정한 연령대 후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 걸까. 똑같은 틀에 끼워 맞춘 결과는 지금의 시대를 열었다. 압박과 강박, 그리고 혐오는 정말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폭력적인 것들의 전부는 스스로를 향하기도 하고 타인을 향하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다양성을 지키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ps 다 좋았는데, 해설이라고 붙여지는 글이 별로였다. 안 읽는 것을 추천한다.

 



13p 젊었을때는 선을 긋고 담을 쌓고 그래서 영원히 못 볼 것 같은 부류의 사람들도 이토록 쉽게 만날 수 있게 된다. 삶의 테두리 너머의 사람들 죽음이 가까워짐에 두려움을 느낀다.

32p 어쩌면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배우고 배우다가 배울 필요가 없는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 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를 거부하는 법. 세계와 불화하는 법.

36p 딸애는 내 삶속에서 생겨났다. 내 삶 속에서 태어나서 한동안은 조건 없는 호의와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존재. 그러나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없다는 듯 굴고 있다. 저 혼자 태어나서 저 스스로 자라고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걸 저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언젠가부터 내게는 통보만 한다. 심지어 통보하지 않는 것들도 많다.

127p 사람들은 그게 무엇이든 예민하게 알아채고, 알게 된 것을 말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긴다. 뭐든 모른 척하고 침묵하는 것이 예의라고 여겨지는 이 나라에서 나는 태어나고 자라고 이렇게 늙어버렸다.

129p 마음은 왜 항상 까치발을 하고 두려움이 오는 쪽을 향해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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