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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 & 드라마 원작 소설

[책 리뷰] 듄3: 듄의 아이들

by 인생은 하나의 필름과도 같으니. 2024.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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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의 아이들>은 전편에서 다룬 듄의 세계관을 더욱 확장하며 인물들의 심리적 갈등과 정치적 갈등이 더욱 심화된다. 이 불안과 혼란이 가득한 듄의 세계는 누구의 손으로 평화를 가져오게 될까. 폴 아트레이데스가 황제의 자리를 떠난 후 아라키스의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막의 행성 아라키스는 폴의 통치 아래 점차 녹지로 변해가며 많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그의 후손들인 듄의 아이들이 듄의 세계에서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 <듄의 아이들>을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책 리뷰



폴이 집권하며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여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막으로 가득했던 아라키스는 어느새 이전과는 다른 무성한 식물의 반경이 넓어지며 듄의 세상을 바꿔가고 있었다. 하나 폴이 남겨둔 과제는 누군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었고 그것은 레토의 손에 달렸다. 한편, 폴이 떠나면서 한 부탁으로 섭정이 된 알리아. 태어나기 전부터 예지력과 성인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태어났고, 또 인격이 형성되기도 전에 선대 대모들의 다른 기억을 각성해 버린 탓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진다. 스파이스의 무아지경에 빠지면서 인격을 지키는 저항력이 낮아지며 더욱 혼란을 겪게 된다. 폴이 사라지고, 어머니인 레이디 제시카가 칼라딘으로 가버리면서 더욱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당장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던 알리아는 고립되고, 하코넨의 유전자가 있던 탓에 하코넨 남작의 의지에 지배당하게 된다. 남작에게 조종당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폭군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레토와 가니마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반면,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레토와 가니마. 유일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아이의 몸을 가졌지만, 어른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별개로 몇 대에 이은 의식과 절대적인 가치관이 머릿속을 지배하지만 확연하게 달라진 것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것이 남아있는 현재의 시대에서 자신이 선택해야 할 것이 그리 많지 않다고 여겼다. 분명한 건, 베네게세리트가 노리는 대로 자신의 유전자를 넘긴다거나 아버지 폴처럼 현재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황금의 길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가니마의 기억을 일시적으로 지운 후 고대어로 황금의 길을 언급하면 다시 기억을 찾을 수 있게 했다. 이미 계획되어 있는 레토의 각성 단계는 누군가의 음모가 아니겠느냐는 의심을 하기도 전에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었다. 퀴사츠 해더락의 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는 인간의 몸을 벗어나 버린 반인 반충 뿐이었다.. 폴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모래벌레와의 결합을 통해 레토 2세는 퀴사츠 해더락의 유일한 길을 충실하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는 코리노 가문을 흡수하여 제국의 유일한 세력으로 등극했다.



아트레이데스
레토 1세 - 폴 - 레토 2세
베네게세리트
제시카 - 알리아 - 가니마




제위를 찾으려는 코리노 가문의 웬시시아 공주의 음모, 엘리아 아트레이데스의 폭정과 더불어 설교자의 존재는 무언가가 달라질 미래를 암시했다. 과거 현재 미래는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시대를 이끄는 자들은 창조와 변화를 경계했다. 누군가는 해방을 위해 자유를 찾았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을 딴 종교는 꾸준히 나라를 갉아먹었고 그 속에서의 음모는 여전히 생생했다. 베네게세리트가 존재하고 그들이 계획했던 퀴사츠 해더락이 있는 한 이 세계의 혼란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었다. 레토는 그 사실을 인지한 후, 내면의 의식 속에 자리 잡아 있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진정한 각성을 이뤄낸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끔찍한 미래를 마주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베네게세리트의 욕심을 저지하고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성공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듄의 신황제>에서 자세한 이야기가 다뤄질 것이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궁극적인 목표가 밝혀질 것 같다.


한번 시작한 이야기는 두꺼운 페이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멈출 수 없다. <듄의 아이들>은 쌍둥이가 태어나고 폴이 떠난 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점점 갈수록 어려운 이야기와 더욱 확장된 세계관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더욱 기대감을 일으킨다. 예지력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흐름을 파악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대화를 따라가기 어려운 순간들이 계속해서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를 너무 세세하게 보려 하지 않고 먼 곳에서 바라보는 것에 중점을 두니 보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보면 볼수록 듄의 이야기는 매우 비극적이다. 사막 속에 사라지면서 비로소 해방되고 또 자유를 얻은 듯 보였지만 여전히 '설교자'로 존재하며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한 폴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아들에게 있어서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의 선택이지만 퀴사츠 해더락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들은 그저 베네게세리트의 계략에 이용된 것뿐이다. 그렇게 벗어나기 위한 변화를 목표로 삼던 초기의 듄과는 다르게 현재의 듄은 순응하고 인류의 평화를 지켜가게 될까. 고정된 미래, 현재를 형성하는 미래 속에서 과연 레토는 어떤 현재를 장식하게 될까. 

 


11p 이제 그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정치적 수완과 지극히 사소한 결정이 가져올 수 있는 엄청난 결과들을. 그러나 그는 이러한 지식과 교묘함이 더 소박하고 결정론적인 의식이 단단한 핵심을 감추는 얇은 겉치레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124p 그들이 할 일은 과거를 현재 속으로 구부려 집어넣은 다음, 다시 미래 속으로 풀려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130p 살아있는 것의 기쁨과 아름다움은 모두 삶이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 속에 들어있지.

214p 과거의 관습과 과거의 종교 속에는 미래가 없었다. 끝없는 '현재' 만이 있을 뿐이었다.

238p 자신이 유한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 을 짐작하는 것은 곧 공포의 시작을 아는 것이다. 자신이 언젠가 죽을 생물이라는 사실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히 배우는 것은 공포의 끝을 아는 것이다.

244p 현실적인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영원하지 않은 우주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가정은 지성이 완전한 의식을 갖춘 균형 유지의 도구가 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성은 자신이 속한 유기체 전체를 관련시키지 않고서는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없다. 그런 유기체는 강렬하고 정력적인 행동에 의해 파악될 수 있다. 하 나의 유기체로 취급되는 사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낡은 타성을 만나게 된다. 사회는 구식의 반동적인 충동의 자극에 의해 움직인다. 사회는 영속성을 요구한다. 영원하지 않은 우주를 드러내려는 모든 시도는 거부의 패턴과 두려움, 분노, 절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예지력이 받아들여지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간단하다. 예지의 환영을 전달하는 사람은 절대적인(영원한)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무섭기 짝이 없는 일들을 예언할 때에도 인류에게 기쁨에 찬 환영을 받는다.

264p 힘의 오류는 이런 것이다. 궁극적으로 힘은 절대 안에서만, 제한된 우주 안에서만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우리의 상대론적인 우주가 주는 기본적인 교훈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다. 어떤 힘이든 항상 더 큰 힘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폴 무앗은 아 라킨 평원에서 사다우카에게 이 교훈을 가르쳤다. 그의 자손들은 아직 그 교훈을 직접 배우지 못했다.

401p 무앗딥은 그대들에게 두 가지를 보여주었다. 확실한 미래와 불확실 한 미래. 완전한 인식과 함께 그는 더 큰 우주의 궁극적인 불확실성에 맞섰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차지한 자리로부터 ’눈먼 사람처럼‘ 내려섰다. 그는 우리에게 사람이 항상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확실한 것 대신 불확실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560p 예지의 미래를 항상 과거의 규칙들 속에 가둬둘 수는 없다. 존재의 가닥은 수많은 미지의 법칙들에 따라 엉킨다. 예지의 미래는 자신의 규칙들을 고집한다. 예지의 미래는 젠수니의 명령에도 과학의 명령에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예지력은 상대적인 완전성을 구축한다. 예지력은 이순간의 작업을 요구하며, 모든 가닥을 과거의 천에 짜 넣을 수 없다고 경고한다.

608p 우주를 궁극적으로 통제하려는 사람은 이 우주가 결국 자신을 물리치는 데 사용하게 될 무기를 만들 뿐이었다. 환영을 선택해서 관리하려면 단 하나의 얇은 가닥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높은 곳에 팽팽하게 매어진 줄 위에서 양편에 우주적인 고독을 둔 채 신의 흉내를 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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