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여름(Noces suivi de L’Été)》는 1939년에 출간된 《결혼(Noces)》과 1954년에 출간한 《여름(L’Été)》을 담은 알베르 카뮈의 여행에세이다.
목차
결혼
티파자에서의 결혼
제밀라의 바람
알제의 여름
사막
여름
미노타우로스 또는 오랑에서 잠시
아몬드나무들
명부의 프로메테우스
과거가 없는 도시들을 위한 간단한 안내
헬레네의 추방
수수께끼
티파자에 돌아오다
가장 가까운 바다
해설: 《결혼》에 대하여
해설: 《여름》에 대하여
작가 연보
옮긴이의 말(2024년)
옮긴이의 말(1987년)
책 리뷰
이 에세이는 한 문장 한 문장 뜯어보고 곱씹어 볼수록 좋은 책이다. 알베르 카뮈가 청년에 쓴 글로 언어의 향취에 젖어들게 만든다. 전반부와 후반부는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달라진 도시의 생생한 풍경을 담았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카뮈의 묘사에 따라 전과는 정반대의 모습이 되어버린, 폐허의 그곳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순간을 겪는 카뮈는 적나라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서도 고향의 향취를 그리워하며 떠올린다. 우리는 그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도 삶의 기쁨 속의 불안을 마주하게 된다.
아주 오래 전에 적힌 문장들이지만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있었다. 역사는 언제나 변하고, 이상은 부정되며 현실은 등지고 있는 현실이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삶의 조화로움은 부정할 수 없어서 아름답고 잔혹하기까지 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그에게 삶의 긍정과 부정이 여과 없이 드러났으며 그 사실에 슬퍼하면서도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죽음을 이야기 하기에는 내 속에 너무나 많은 젊음이 있다는 말처럼 후반부로 갈수록 어둠이 자리 잡기 시작하는 모습이 슬프기도 했다. 자연스레 젊음을 소진하며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연스럽게 삶의 이치를 깨달아간다는 것이겠지만 이상을 바랄 수 없는 자신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했다. 젊음을 소진한 대가는 오직 죽음뿐일까. 그저 무의미한 일로 치부되지 않을 카뮈의 이상은 자연 속의 언어들처럼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카뮈가 초기에 쓴 글인만큼 풋풋한 느낌이 있는 에세이였다. 어떤 사랑을 하면 이런 언어들이 피어날 수 있을까. 이 책의 언어들을 꼭꼭 씹어 삼키고 싶을 정도로 페이지를 넘기는 것도 쉽지 않았고, 책을 손에서 내려놓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 생각들을 내 안에 들여놓고 싶었다. 계절 속에서 느끼는 유일한 공평함처럼 필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걸 보여주는 문장이 있었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마침내 내 속에 억누를 길 없는 여름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멈춤을 인정하고 삶의 잔혹함을 받아들이는 모습에 서글픔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그를 찾아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이것이 그가 느낀 만족감 속의 고독인 걸까.
자본주의가 발달하며 과학이 중시되고 물질적으로 풍족해졌지만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로 인해 인간의 삶을 더 복잡하고 불안정해졌다. 물질만능주의와 사회적 갈등은 갈수록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인문학이 인간을 부유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정신적 성숙을 이룩하고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음은 저명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인문학적 통찰과 감성을 통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균형과 의미를 찾아야 한다. 카뮈의 에세이는 그 자체로도 그러한 성찰을 제공하며, 우리에게 자연과 삶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되새길 기회를 준다.
원작 에세이가 프랑스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결혼ㆍ여름>에는 해설도 물론 있지만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자신이 느끼는 대로 해석하는 것이 이 책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 것이다.
문장 곱씹어 보기
13p 폐허와 봄의 이 결혼식에서 폐허는 다시금 돌이 되어 인간의 손길이 가했던 저 반드로움을 잃어버리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왔다. 오늘 마침내 과거가 폐허를 떠나니 폐허는 이제 오직 무너지는 만물의 중심으로 환원하는 저 심원한 힘에 순종할 뿐이다.
26p 그렇다 나는 현존한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놀라운 것은 내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28p 사람은 몇 가지 익숙한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두 가지의 생각들을 가지고, 세상 돌아가는 대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면서 그 생각들을 반드럽게 연마하고 변모시킨다. 자기만의 한 가지 생각을 가지고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으려면 10년 이 걸린다. 사실 이건 좀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거기서 세계의 아름다운 얼굴과 어떤 식으로 친밀해지는 이점을 얻는다.
31p 얼마나 큰 슬픔과 끈질긴 아름다움으로 참말을 하는가! 세계 앞에서 나는 거짓말하고 싶지 않고 남이 내게 거짓말해 주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끝까지 내 명철한 의식을 유지하고 나의 모든 아낌없는 질투와 공포 속에서 나의 종말을 응시하고 싶다. 내가 세계에서 분리되면 될수록, 영원히 지속되는 하늘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운명에 집착하면 할수록, 나는 죽음이 두렵다. 의식적인 죽음들을 창조한다는 것, 그것은 곧 나를 세계로부터 떼어놓 는 거리를 좁히는 것이며 영원히 잃어버린 한 세계의 열광적인 이미지들을 의식하면서 기쁨도 없이 완성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리하여 제밀라 언덕들의 쓸쓸한 노래는 그 교훈의 쓰디쓴 맛을 내 영혼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는다.
49p 나는 세상에 인간을 초월하는 행복이란 없다는 것을 해가 떴다 지는 나날들의 곡선밖의 영원이란 없다는 것을 배운다. 이 하찮지만 본질적인 재산 상대적인 진실들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 유일한 것이다.
52p 인류의 온갖 악들이 우글거리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그리스인들은 다른 모든 악들을 쏟아놓고 난 뒤에 끝으로 가 강 끔찍한 악인 희망을 꺼냈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상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희망은 체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 희망을 박달 당했다는 것은 절망과는 다르다
55p 그 거장들의 그림 속 인물들이 우리가 피렌체나 피사의 길거리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바로 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진정한 얼굴을 바라볼 줄 모르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동시대 사람들을 바라보지 안 은 채 그들에게서 오로지 우리의 대응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 이 되고 처신 상의 본보기가 될 것만을 찾는 데 급급한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얼굴 그 자체보다는 그것의 가장 저속한 시에 더 관심이 있다.
56p 그림의 의도는 사실 생동감, 에피소드, 뉘앙스, 거기서 느껴지는 감동이다. 의도는 시적인데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 은 진실이다. 그런데 나는 지속하는 모든 것을 진실이라고 부 르노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오직 화가들만이 우리의 허기를 달 내줄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거기서 어떤 미묘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화가들은 스스로 육체의 소설가가 되어 작업하는 특전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재라고 하는 저 훌 륭하고도 덧없는 재료를 가지고 작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라는 것은 언제나 어떤 몸짓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57p 내일의 기대가 없는 사람이 감동을 느낄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저 무감동, 희망을 모르는 인간의 위대함, 영원한 현재, 사려 깊은 신학자들이 지옥이라고 불렀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지옥은 고통받는 육체다. 토스카나의 화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그 육체지 육체의 운명이 아니다. 예언적인 회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희망의 이유를 발견하려고 찾아갈 곳은 미술관이 아니다. 사실 영혼의 불멸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관심 거 리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유일한 진실이 육체인데도 그것의 진액을 남김없이 다 빨아먹기도 전에 육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육체는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아니 적어도 그들은 육체가 제시하는 단 하 나의 해답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육체를 거부한다.
58p 무감동 상태가 오래 이어지다 보면 사람의 얼굴이 어느 풍경의 광물적인 위대함과 일치되는 때도 있다. 스페인의 어떤 농부들이 그들의 올리브나무를 닮게 되듯이, 영혼이 깃든 하찮은 그림자들은 아예 싹 지워버린 조토의 그림 속 얼 굴들은 마침내 토스카나가 아낌없이 주는 유일한 교훈을 통해 토스카나 그 자체와 하나가 된다. 감동이 배제된 정념의 수련, 금욕과 쾌락의 혼합, 인간도 대지도 비참과 사랑의 중간 지점에서 자체를 규정할 때 따르는 대지와 인간이 공유하는 어떤 울림, 이것이 바로 그 교훈이다. 우리가 가슴으로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이란 그리 많지 않다.
71p 더 이상 나가지 말고 이 균형점에서 멈춰야 할 것이다. 그 절묘한 순간, 영성은 도덕을 부정하고, 행복은 희망의 부재에서 태어나며, 정신은 육체에서 근거를 발견한다. 진실은 어느 것이나 그 안에 손맛을 담고 있다고 한다면 부정은 어느것이나 긍정이 피어남을 품고 있다고 할 것이다.
73p 이쯤 하면 여기서 우리의 주된 관심이 어떤 사막의 지리학에 착수해 보려는 데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눈치챌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한 사막은 자신의 목마름을 기만하지 않고 사막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만이 느끼는 사막이다. 그 때야, 오직 그때야 비로소 사막에 시원한 행복의 물이 가득히 차오를 것이다.
117p 안간힘을 쓴다. 속없는 사람들은 그건 좋지 못하다고 떠들고 다닌다. 우리 는 그것이 좋지 못한 일인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결론인즉 그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러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칼 앞에 서 결코 고개 숙이지 않는 것, 정신을 섬기지 않는 힘에 절대로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끝이 나지 않을 과업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 업을 계속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다. 나는 진보나 그 어떤
'역사'철학에 찬동할 만큼 이성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은 그의 운명의 인식에 있어서는 끊임없이 발전된 왔음을 나는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인자조건은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보다 잘 인식하게 됐다. 우리는 모순 속에 지 해 있지만 그 모순을 거부해야 하며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 바 딱히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지닌 인 간의 책무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끝없는 불안을 진정시켜 줄 빛 가지 처방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는 찢어진 것을 다시 폐 매야 하고 이토록 명백하게 부당한 세게 속에서 정의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며 금세기의 불행에 중독된 민중들에게 행복이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초인적인 과제다. 그러나 인간들이 오래 걸려서야 비로소 완수할 수 있는 과제를 가리켜 흔히 초인적이라고 들 하는 것이다. 그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자. 비록 힘 이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 어떤 사상이나 안락의 얼굴로 접근한다고 할지라도 정신에 관한 한 확고한 태도를 갖도록 하자.
첫째,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의 종말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너무 귀를 기울이지 말자. 문명들은 그렇게 쉽사리 사멸하 지 않는다. 설혹 이 세계가 무너지게 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다른 많은 세계가 무너지고 난 뒤에야 무너질 것이다. 우리가 비 극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이 비극적인 것과 절망을 혼동하고 있다. "비극이란 불행을 한바탕 크게 걷어차는 발길질 같은 것일 터이다
125p 그런데도 오늘의 인간은 역사를 선택했고, 그 역사를 외면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인간은 역사를 제 뜻대로 부리기는 커 녕 날이 갈수록 조금씩 더 역사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는 '생각이 대담하고 마음이 홀가분한 아들 프로메테우스를 배반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는 프로메테우스 가 구원하고자 했던 인간들의 비참으로 되돌아간다. "그들은 꿈의 형상들처럼, 보되 보지 못하고 귀를 기울이되 듣지 못하니···."
128p 제신들에 대한 반항 이상으로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바로 그 오랜 끈기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떼어놓지 않고 배제하지도 않으려는 저 경이로운 의지야 말로 고통받는 인간의 마음과 이 세계의 봄을 항상 화해시켜 주었고 또 앞으로도 화해시켜 줄 것이다.
141 역사는 역사보다 먼저 존재한 자연 세계도, 역사를 초월하는 아름다움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역사는 그런 것들을 무시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의지를 이성의 테두리 속에 한정했는데, 반면에 우리는 결국 이성의 중심에 의지의 충동을 갖다 놓아, 그 때문에 이성은 살인적으로 되었다. 그리스인들이 볼 때 가치들은 모든 행동에 선행하고 행동의 한계를 분명하게 정해줬다. 현대 철학은 가치를 행동의 끝 에다 위치시킨다. 가치들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간다.
우리는 오직 역사가 완결될 때 비로소 그 가치들의 전모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치들과 함께 한계도 사라진다. 미래의 가 치들에 대한 관념들이 서로 다르고, 바로 그 가치들이 통제력을 갖지 못하면 투쟁이 무한대로 확장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메시아 신앙들이 서로 대립하고, 그 아우성이 여러 제국의 충돌로 이어진다. 헤라클레이토스에 따르면 무절제는 일종의 화재다. 불은 번져가고 니체는 추월당했다. 유럽은 망치로 철학하는 것이 아니라 대포를 쏘아대며 철학한다.
144p 그러나 이 시대는 우리의 것이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증오하며 살 수는 없다. 이 시 대는 그 결점들의 과다만이 아니라 그 미덕들의 과잉 때문에 이토록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무지의 인정, 광신의 거부, 세계와 인간의 한계, 사랑받는 얼굴, 그리고 끝으로 아름다움, 이런 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 인들과 합류하는 진영이다!
147p 바로 그 태양이 그렇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빛이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우주와 형상들을 캄캄한 눈부심의 덩어리로 응고시켜 버린다고 남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달리 말할 수도 있는데, 내게는 언제나 진리의 빛이었던 이 희고 검은빛 앞에서 부조리에 대한 내 생각을 간략하게 밝혀두고 싶다.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남들이 부조리에 대해 마구잡이로 논하는 것은 견딜 수 없다. 그래도 역시 부조리를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는 다시 햇빛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있다. 아직 찾는 중인 사람에게 사람들은 그가 이미 결론을 내렸기를 바란다. 숱 한 목소리들이 벌써부터 당신이 찾아낸 건 이것이라고 일러주지만, 그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냥 찾기를 계속하면서 남들은 떠들게 내버려 두라고? 물론이다. 그러나 때로는 자기 방어도 해야 한다. 나는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는 조심스럽게 그것에다가 이름을 붙여보았다가 앞시 한 말은 취소하고 했던 말을 되풀이하고 전진하다가 후 피한다. 그런 때 도 남들은 나보고 결정적인 이름들은, 아니 딱 하나만의 이유를 대라고 오금을 박는다. 그러면 나는 불끈하여 대든다. 이름을 붙인 것은 이미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최소한 내가 말렉은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면서 고집스레 버티고 있었다. 아마, 티파자로 돌아가게 될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 다. 젊은 시절의 고장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스무 살 적에 사랑했던, 혹은 강렬하게 즐겼던 것을 마흔 살에 다시 살아보려는 것은 커다란 광기, 언제나 벌을 받게 마련인 광기다 내게는 청춘의 끝을 의미하는 전쟁의 시절이 끝나자 이미 한 차례 티파자에 돌아왔던 적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잊을 수 없는 어떤 자유를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160 방향을 잃은 채 호젓하고 젖은 들판을 걸으며 나는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그 힘, 내 능력으로는 바꿀 수 없음을 일단 인정하고 나면 있는 것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그 힘이나마 되찾으려고 애를 썼다. 사실 나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 라가, 지난날 사랑했지만 단 하루 사이에 사라져 버린 얼굴들을 이 세계에 되찾아줄 수는 없었다.
161 세계가 단번에 늙어버렸고 또 그와 함께 우리도 늙어버렸다. 내가 이곳에 와서 찾고자 한 그 충동, 그것은 자신이 이제 앞으로 달려 나간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만 유효한 것이어서 그때 비로소 그를 떠오르게 한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약간의 순수함이 없이는 사랑도 없다. 순수함은 어디에 있었던가?
제국들이 무너졌고 민족들과 인간들이 서로 목을 물어뜯었고 우리들의 입은 더럽혀졌다. 처음에는 순수한 줄 모르고 순수했던 우리가 이제는 원치 않으면서 죄인이었다. 우리가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신비도 더 커졌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오, 이 무슨 어이없는 일인가, 도덕에 매달린다! 장애자가 되어 미덕을 꿈꾸다니! 순수하던 때의 나는 도덕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이제는 그걸 알지만 그 도덕의 높이에서 살 능력이 없었다.
166 오랫동안 속임수로 달래려 들면 그만 존재 자체가 말라 오그라들 수 있는 그 갈증은 다름 아닌 사랑과 찬미였다. 왜냐하면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그저 불운이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니까. 오늘날 우리는 모두가 그 불행으로 죽어가고 있다. 피와 증오가 심장 자체를 말려 죽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정의를 요구하다 보면 정의의 원천인 사랑이 바닥나고 만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아우성 속에서 사랑은 불가능하고 정의는 역부족이다.
167p 거기서 세계는 날마다 항상 새로운 빛 속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오, 빛이여! 이것은 고대극 속에서 그들의 운명과 마주 선 모든 등장인물이 내지르는 외침이다. 이 마지막 호소는 또한 우리들의 것이기도 하니, 나는 이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마침내 내 속에 억누를 길 없는 여름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179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만 서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세계의 실상을 알아차렸다. 나는 세계의 선은 동시에 해로울 수 있으며 큰 죄들이 유익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나는 세상에는 두가지 진실이 있다는 것을, 그중 하나는 절대로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여기서 오래된 아름다움을 젊은 하늘을 다시 찾았고 우리가 광기에 사로잡혔던 최악의 세월 속에서도 그 하늘의 기억이 한 번도 내게서 떠난 적이 없었음을 마침내 깨달으면서 나의 행운을 가늠할 수가 있었다. 결국 내가 절망하는 것을 막아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마침내 내 속에 억누를 길 없는 여름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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