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 레인첸스 감독 / 땅굴수색대
죽음 앞에서도 인간은 총 대신 손을 내밀 수 있을까.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은 더 이상 전진도 후퇴도 불가능한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죠. 참호전은 장기전이 되었고, 전선은 땅 위가 아닌 땅 아래로 확장됩니다. 영화 《땅굴수색대》는 이 전장의 어두운 심연, 지하 땅굴에서 마주한 두 병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연합군과 독일군은 서로의 참호를 무너뜨리기 위해 지하를 팝니다. 이른바 ‘땅굴전’은 포탄과 총알이 오가지 않는 공간에서 더 은밀하고 더 끈질기게 이어지는 싸움이었습니다. 땅굴병들은 좁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적의 땅굴을 찾아내고, 그 아래에 폭약을 설치해 구조물을 붕괴시키는 임무를 맡았던거죠.
이 영화는 바로 그 숨 막히는 지하 공간에서 적국의 두 병사가 만나는 장면을 그립니다. 국적은 다르지만 처한 상황은 같았죠. 처음엔 서로를 때리고 밀쳐내며 본능적으로 적대하지만 위기 상황에 맞닥뜨린 두 사람은 함께 땅을 파며 탈출을 모색하게 됩니다. ‘적’이라는 정체성은 위기 앞에서 무너지고, 그들을 묶는 것은 국가나 이념이 아니라 살아야겠다는 본능으로 변합니다. 그러던 중, 독일군 병사는 사망하고 만다. 미군 병사 혼자 살아남아 땅굴 밖으로 나왔지만 그곳은 독일군 진영이었던거죠! 그러나 그들은 미군을 살려주는데요.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요? 도의적 차원? 일말의 연민?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총 대신 손을 내밀며 인간다움을 지키는 그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지만 전쟁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참으로 안타까웠어요. 전쟁이라는 비극 앞에서 모든 기준은 무의미해집니다. 전투의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죠. 죽음 앞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태도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총성은 그는 끝내 죽은 것인지,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남깁니다. 모호한 결말이라 할 수도 있지만 불확실함이 참혹한 현실을 강조합니다. 전쟁은 적뿐 아니라 같은 편, 같은 인간마저 죽이는 무자비한 광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죠. 의심과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이 비인간적인 선택을 감행해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전쟁의 실체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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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 수색대
1차 대전 중 전선 아래의 터널, 미군과 독일군 둘이 갇혔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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