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수 감독 / 야행성
깨어 있는 아이들의 밤, 그 침묵 속에 담긴 책임감의 방향성.
자살한 아버지를 둔 하영, 늦은 밤 고생하는 엄마와 무관심한 아빠 사이에 있는 해원. 이들이 도시의 중심에서 밀려나 외곽으로 떠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집이 안락한 공간이 되지 못하자 그들은 혼자 있을 수 있고 편히 숨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아 헤맵니다. 학교가 유일한 피난처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낮에도 밤에도 이들이 머물 수 있는 진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잠들지 못하는 밤을 견디고, 학교에서는 피곤에 지쳐 겨우 눈을 붙이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영화를 처음 영화제에서 접했을 때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그건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보다 청소년들의 일탈에 더 쉽게 눈길이 갔기 때문일 것이죠. 흔히 독립영화에서 접하게 되는 무거운 ‘불행 서사’가 가득했기에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가지고 이 영화를 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이들의 행동이 절박하고 필사적인 선택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들과는 달리 이들에게는 선택의 자유도 회복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은 탈선이 치명타로 돌아오는 이 순간은 청소년에게 유독 가혹한 세상의 이면입니다.
서로의 상처를 마주한 하영과 해원은 그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서게 됩니다. 집중하지 못했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옛날 영화를 같이 보자는 제안도 합니다. 어른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폭력의 흔적을 보고도 외면해야 하고 분노를 제대로 표출할 수조차 없는 사회에서 그들은 분풀이하고 도망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밤은 어른들의 몫인 듯하지만, 그 밤은 아이들에게 너무 외롭고 차가웠습니다.
영화 속에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 한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어른들의 무관심에 내몰린 그 아이와 지금의 하영과 해원이 오버랩 됩니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달라져도, 아이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왔습니다. 아이들을 야행성의 어둠으로 밀어낸 건 누구일까요. 어른들의 무책임함과 방관으로 물든 이 밤에 아이들은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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