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지하정원>은 홍준성의 장편 소설이다. '비뫼'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묵직하고 빼곡한 세계관은 극도의 몰입감을 자랑한다. 분명 한국 소설이지만 굉장히 넓은 세계관을 통해 접근하는 허무의 대서사시는 상당히 인상깊다. 소설의 배경이지만 인간 문명사에서 한번쯤은 등장했던 도시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살아온 사회에와 인간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그 뿐만 아니라 철학적 성찰까지 고려하는 소설의 결은 오랜 시간 동안 남을 것 같다.
목차
지하정원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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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후기
삶을 정리하는 것은 일련의 과정으로 흘러가 책이 될 수 있지만 책은 삶이 될 수 없다. 조금씩 단어가 더해져 하나의 글이 된다. 정하지 않은 기간의 경계에서 자기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인생은 아무도 모르게 시작된다. 그가 말한 것처럼 자신은 과거의 결과물이자 우연의 덧없는 퇴적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좀 달랐을까. 비극의 시간은 언제부터 시작된 줄도 모를 정도로 빨리 흘러가 자신을 뒤덮는다. 그의 정체는 나라의 외면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어 없는 존재로 살아야 했던 어떤 식물학자의 이야기이다.
잇따른 비극으로 인해 그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혼돈을 뿌리로 덮지는 못했던 존재를 철저한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비밀을 밝히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의 치열한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믿음은 한없이 무너지고 존재하지 않았던 허상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고 진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현재에서 바라보는 과거는 참혹함 그 자체였다. 무언가 또렷해지지만, 정확히 보이지는 않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점차 그 존재에 가까워짐을 느낀다. 사람을 빨아당기면서도 베일에 가려져 저주받은 도시를 받치고 있는 한 나무는 이유도 모른 채,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나무에 대한 것은 무성한 소문은 은폐에 의해 그 존재감을 더해가고 있었다. 신빙성을 더하는 진실은 어느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연구가 지속될수록 그 미지의 존재는 더욱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여러가지 단어들이 맴돌며 한 문장을 완성하는 어떤 존재는 순수한 절망과 죽음의 두려움으로 남았다.
많은 이들이 겪었던 비극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과거를 잊지 못하는 건 나름의 괴로움이었지만 고통의 연속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과거의 모습은 사라지고 현재의 나약함만 남은 모습에 동정심보다는 알 수 없는 감정들로 가득했다. 그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죄에 의한 것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통의 근원을 찾아 헤매지만, 권력에 의한 억압은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세상의 그릇된 점을 성토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각기 계층마다 이루어지는 교육과 사상은 그들의 평생을 좌우했다. 사람에게는 자아가 있었지만, 세뇌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것은 세상의 원리며 본질이었다. 희망이 사라진 곳에서는 희망이 사치였으며 참혹한 비극은 익숙했다. 권력자들은 체제를 바꾸는 것보단 폭동을 일으켜 제압하는 방법을 택했고 무의미한 연례행사처럼 이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금씩 생겨나는 변화는 내면에 스며든다.
책의 단락에 놓인 문구가 결말과 맞닿아 한 줌의 의미마저 소실된 고통으로 이어진다. 여전히 모르는 것들로 가득하지만 설령 그 사실에 대해서 안다고 해도 그의 손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모든 것이 붕괴한다는 건 비극도 종결된다는 것이다. 후회로 물드는 인생 낯빛의 정체는 비극의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곳에서도 희망을 부르짖는 이들의 소망처럼 기꺼이 마무리를 짓는다. 허무함은 예고된 또 다른 완결의 시작이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이 나지만 새로운 탄생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도 그 공허함마저 마치 정당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무는 생처럼 죽음과 함께 세상을 지탱한다.
인상 깊은 구절
p 60 그러나 삶은 속죄가 될 때 끝난다. 속죄가 돌이켜지는 것도 없을 뿐더러 생은 되돌림이 아닌 까닭이다.
p 160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자는 말보다는 그 역에 오랫동안 매달려왔다. 발닿는 곳마다 온통 그림자 뿐이지만, 그렇기에 어딘가에는 분명 그만큼의 빛이 존재하리라는 믿음.
p 198 죽음이 빼앗아간 건 미래가 아니라 상상력이고, 지옥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삶이야말로 정녕 지옥이다.
p256 관계는 유리잔과도 같다. 깨지면 다시 붙일 수 있지만 자국은 남는다. 최후의 순간 주마등을 위해 마련한 예비전력이 커지면, 본드로 간신히 남아있던 조각들이 다시 떨어져 나간다. 파편들이 각자 소리치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러다가 기억들은 암흑 속으로 뿔뿔히 흩어지고, 거기서 나는 떠나가지 말라고 빈다. 울며 애원한다.
347p 추억은 위험하다. 희망을 가질 수 없을 땐 좋았던 기억이 암세포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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