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로 코네티 작가의 장편소설 <여덟 개의 산>은 제7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여덟 개의 산>의 원작 소설이다. 영화를 더욱 자세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작 소설을 살펴보는 것이 훨씬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소설을 먼저 감상하기로 했다. 산에서 시작된 삶과 그 주변을 아우르는 이야기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가족과 우정,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더욱 몰입감 있는 전개 구조를 보여주며 작가의 자전적 기억을 담아내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꼭 보기를 추천한다.
목차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프롤로그
1부 어린 시절의 산
2부 화해의 집
3부 친구의 겨울
옮긴이의 말
책 후기
인생은 고독이라는 씁쓸함 위에 나라는 긴 기차를 연결시켜 여덟 개의 산을 헤쳐나가는 여정이다.
도시가 익숙한 나에게는 산에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이들의 모습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정상 위에 오르면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지만 산을 오르는 것이 힘들기만 한 나에게는 산이 어떻게 삶이 되어가는지를 바라보는 일이 상당한 의미를 전달한다. 정복의 의미보다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어깨에 얹고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 등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게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만큼 그들이 느끼는 등산의 의미가 문득 궁금해졌다. 책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삶과 결부되어 표현되는 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가장 낯선 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그들의 익숙함은 오로지 그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세밀하게 들여다 보기로 했다.
<여덟 개의 산>은 총 3부로 나누어져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같은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가족, 나, 우정. 그 주제를 중심으로 주인공인 피에트로가 산에 대해 생각하는 태도의 변화를 이야기에 잘 녹여낸다. 그 부분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그렇게 피에트로는 처음이라 알 수 없었던 현재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자신의 산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산은 삶과 마찬가지였다. 아름다운 만큼이나 잔혹하게 여겨지는 것들은 산이 불러오는 자연스러움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모습은 마치 고독을 받아들이는 것과도 같아서 서글프게 느끼지는 않았다. 그것 또한 자연스럽게 여겨져서 여덟 개의 산이 왜 삶과 같은지 알 것만 같았다. 모든 계절 속에서 살아갔던 브루노와 이제야 모든 계절을 마주하게 된 피에트로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산에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다. 산의 일부처럼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브루노와 그렇지 않은 피에트로의 대비된 모습이 인상깊었다.
모든 이야기는 변화에서 비롯된 자신에 의해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피에트로는 도시에서 자랐지만, 산 생활을 좋아했다. 그들은 매년 여름마다 몬테로사의 산기슭에 있는 그라나에서 지낸다. 엄마는 등산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관심을 가지며 전체적인 산행을 즐기지만, 아버지는 광적일 정도로 집착하여 홀로 산을 정복하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부모님들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산행을 접하게 된 피에트로는 점차 익숙해지며 본격적으로 산 오르는 것을 배우게 된다. 사실 피에트로는 산보다는 개울을 좋아하며 산행보다는 친구와 노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산을 정복하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산의 일부를 마주하며 많은 것을 알아간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산과 멀어졌고 산이 싫어진 건 아니지만 그곳에 있고 싶지는 않아 도시에서의 생활을 지속하게 된다.
도시와 익숙해진 만큼 산과 자연스럽게 멀어져 일상을 살아가던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그라나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계속해서 돌아가지 않았으리라. 풍경이나 산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많은 것이 달라진 그라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어머니를 통해 들으며 왜 아버지가 끊임없이 세상과 갈등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오랜 시간 고독 속에 머물러야 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그때 머문 아버지와의 관계와 브루노와의 끊어진 우정을 다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피에트로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경험한 겨울 산의 모습이었다. 아마 피에트로는 산을 받아 들인 브루노의 산을 마음에 품고 이제는 자신을 위한 진정한 산행을 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에트로가 산을 좋아했던 건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함이었을까. 그 알 수 없는 것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2가지의 변화를 불러오며 시작되었고 그것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의 정답으로 도출할 수 없는 어떤 정답은 무작정 떠난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산행을 잘하면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은연중에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쳤고 어른이 되기 위해 도시에 살았지만 돌아오고 나서야 진정한 어른의 모습으로 변모하게 되는 모순을 마주하게 된다.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정답을 오랜 방황을 거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과거의 미래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재의 이야기는 오직 현재에, 존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삶의 흔적은 지나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으로 가득하다. 단지 현재의 선택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건 분명했다. 달라지지 않는 주변에 의해서 변화를 추구하거나 혹은 그 자리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저마다의 산을 구성하는 큰 힘이 되어갔다. 저마다의 산을 구성한 이들처럼 모든 계절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인상 깊은 구절
42p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현재라고 한다면 과거는 나를 지나쳐 흘러간 물이다. 그 물은 아래 방향으로 흘러간다. 반면의 미래는 놀라움과 위험을 품은 채 위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아버지에게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운명이 어떻든 간에 그 운명은 우리 머리 위, 산에 있다고.
175p
이야기의 모든 부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체를 하나로 조합 해내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184p 여름은 마치 눈을 녹이듯 기억을 지워버리지만, 밤하늘 가득한 겨울의 눈이자 잊히지 않으려는 겨울의 기억이라고.
303p 아버지를 따라 산을 타던 것을 그만둔 지 한참이 지나서야, 어떤 인생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산이 존재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깨달았다. 나와 그의 인생에서 정중앙에 있는 산, 우리의 인생이 시작된 처음으로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가장 높은 첫 번째 산에서 친구를 잃은 우리 같은 사람은 단지 여덟 개의 산을 배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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