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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 & 드라마 원작 소설

[책 리뷰] 이처럼 사소한 것들

by 인생은 하나의 필름과도 같으니. 2024.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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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 키건 작가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10년 만에 출간된 소설인 만큼 짧지만 명확하고 또 따뜻함이 가미되어 있다. 실제 1996년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섬세한 관찰과 정교한 문체를 통해 인간의 내면 갈등과 고뇌를 자세히 그려냈다. 사소함이 견고하고도 불합리한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하는 책이다. 계절이 변하듯 인간 또한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의 열렬한 팬으로 유명한 배우 킬리언 머피는 직접 제작과 주연을 맡아 이 소설을 영화화했다고 하여 더욱 기대되는 책이다.



목차

이처럼 사소한 것들 _11
덧붙이는 말 _123
감사의 글 _125
옮긴이의 글 _127



상세이미지



책 후기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11월의 바람이 불어온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두런거리고 바쁜 일들이 순식간에 휘몰아친다. ‘라는 첫 문장으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첫 장을 연다. 누군가를 엿보듯 조금씩 누군가의 일상으로 스며들어 간다. 경기가 어려워져 혹독한 시기였지만 주변 사람들과 이 위기를 이겨내며 살아간다. 사소한 이야기와 소소한 일상을 만끽하는 빌 펄롱은 그저 평범한 남자이다. 그는 빈곤하게 태어나 고아가 되었지만, 미시즈 펄슨 이라는 어른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번듯하게 성장했다. 부유하지는 않아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안정된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석탄 상인이다. 이 사소하면서도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불안감을 느끼는 펄롱은 안온한 일상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순간의 실수가 모든 것을 바꿔놓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모든 것을 잃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마스를 앞둔 아침에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여자아이를 통해 이 수녀원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다른 사람들처럼 침묵을 유지하면 지금의 삶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마을에서 큰 권력을 행사하는 수녀원과의 충돌은 예견된 일이었다. 깊은 고민에 빠진 펄롱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이 자신의 삶에 끼칠 어떤 영향력을 생각하다 침묵을 선택한다.

 

하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문제가 닥쳐오며 그는 자신을 이렇게 성장시켜 준 ‘미시즈 펄슨’이라는 어른을 떠올리게 된다. 그가 자신을 구했듯 나 또한 그 소녀에게 미시즈 펄슨과 같은 어른이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시작될 최악의 상황보다 지금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적어도 없으리라.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에서 비롯된 용기임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결말 뒤의 상황이 궁금해지지만 적어도 그 소녀에게 있어서 새로운 시작으로 발돋움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계절은 변하지만 사람은 왠지 모르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강물은 자기가 갈 길을 안다는 것과는 다르게 사람은 계속해서 내면을 채워가고 세상의 변화에 적응해 가야만 한다. 인간이 인간을 해치지만 인간이 인간을 돕는 그러한 순환으로서 돌아간다. 절대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 모여 이 세상은 ‘유지’된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책의 내용과는 다르게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씁쓸해진다. 그런 기억을 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 기억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처럼 사소한 일들이 모여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사소함으로 치부될 수 없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사소한 것들은 세상을 구하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어떤 사소한 용기가 사소한 것을 절대 사소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이야기였다. 첫 문단을 다시 읽어야만 보이는 것들은 사소하지만 따뜻하게 다가왔다.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은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했던 시설이다. 당시 성 윤리에 어긋난 짓을 한 여성들을 교화시키고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되었지만 실제로는 죄 없는 소녀들과 여자들이 감금되어 폭행, 성폭력, 정서적 학대 속에서 노역에 시달렸다고 한다. 어떤 기준과 절차보다 누군가를 통제하기 위한 요소로 ‘종교’를 앞세워 국가적 폭력을 자행한 것이다. 이렇게 약 70년간 자행된 인권유린에 대해 침묵하던 아일랜드 정부는 2013년이 되어서야 뒤늦은 사과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 책은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바탕으로 했지만,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한 인물을 통해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감정을 글로써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피터 뮬란의 영화 <막달레나 시스터즈>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 이 영화가 공개되고 제5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2009년 아일랜드가 진상조사에 나서게 되었고 사실로 밝혀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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