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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 & 드라마 원작 소설

[책 리뷰] 박찬욱 감독 필생의 프로젝트, 액스

by 인생은 하나의 필름과도 같으니. 2024.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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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지나도 바래지지 않은 <액스>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장편소설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이 소설은 담담하면서도 박진감 넘친다. 2005년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으며 박찬욱 감독이 가장 영화로 만들고 싶은 원작 소설로 꼽기도 했다. 제목의 액스(The Axe)는 도끼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정리해고라는 은유적인 표현을 담고 있다. 1996년 미국 사회는 호황을 누렸지만 산업자동화에 의해 정리 해고 당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운명에는 누구도 관심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에 밀려나면 당연하게 그 처지를 순응해야 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노동자 중 하나였던 버크는 자신의 '현재'를 되찾기 위한 수단으로 '살인'을 이용하게 된다. 그 전환점이 과연 자신에게 좋은 기회가 될까.

 


책 후기

 

제지회사 관리직으로 20년 간 재직하던 버크 데보레는 회사의 합병으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4분의 1의 직원들이 해고를 달 됐다. 어디에도 채용되기가 애매한 나이였기에 입사지원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취업에 계속해서 실패하자 버크는 기막힌 해결책을 찾아낸다. 바로 자신보다 더 나은 스펙의 다른 지원자를 제거하여 자신이 채용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선, 제지회사의 가짜 구인광고를 내고 이력서 중에서 채용될만한 여섯 명을 추려내어 경쟁자를 하나둘씩 제거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들을 죽이기 전에 몇 가지 원칙을 세운다. 바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그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그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었다.

채용이 목적이었던 그는 살인이라는 수단을 이용한다. 자신의 불행을 최소화하고 불안정한 중산층 행복을 되찾기 위해 타인을 불행에 빠뜨리면서 까지 거듭하여 노력한다. 충동적인 이유로 인해 저지르는 것도 아니었고 살인의 쾌락이나 성취감은 더더욱 없었다. 그는 단지 이전처럼 중산층을 삶의 유지하고 싶었을 뿐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잇따라 찾아오는 죄책감은 어떠한 것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진심을 털어놓고 나서는 조금씩 더 희미해진다. CEO들이 대량 정리 해고를 했던 것처럼 자신 또한 목적을 위해 수단을 이용했을 뿐이라고 자신에게 속삭였다. 위태롭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연은 운명처럼,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그를 따라온다.

 

계속된 실패에 우울감과 좌절이 차오르지만 그 사이를 파고드는 서늘함이 전환점을 맞이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당연하지 않을 방법에 다소 극단적인 수단으로 '살인'이 이용된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범행이 들키지 않았고, 정말 그의 삶에 필요한 것처럼 '어쩔 수 없는 행위'로 작용하게 된다. 그의 살인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에게 무작정 비난을 쏟을 수 없다. 이 불편하고도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내몰린 이 상황이 남자를 살인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갖 수단을 이용하여 목적을 이룬 그의 죄책감이 완전히 지워질 수 없을 것이다.

경쟁이 불가피한 자본주의 사회의 극단적인 면을 강조한 만큼, 당차고 빠른 전개가 매우 흥미로웠던 소설이었다. 서늘한 현실은 사람을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주인공의 그릇된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가도,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모순을 가지게 만든다. 다만, 주인공이 지나치게 운이 좋아 들키지 않았다는 점이 찝찝하다.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닥치면 또 ‘살인’이라는 방법을 택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기업 횡포가 개인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최악의 결말을 책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버크 데보레와 같은 사람이 주변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39p 아무도 우리를 초대하지 않았다는 것. 아무도 우리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는 것. 일자리와 봉급과 중산층의 멋진 삶은 권리가 아닌,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전리품입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하죠. '그들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는 거야.' 당신은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44p 내게 보내온 이력서를 훑어보는 건 무척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이력서에는 그들의 두려움과 용기, 그리고 독한 결심이 담겨있었다. 또한 지나친 자만심과 무지의 흔적도 묻어 나왔다. 인생의 쓴맛을 아직 충분히 보지 못한 그들은 내 경쟁자로 볼 수 없다.

58p 내 경력,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판매도구다. 그리고 면접은 구매 권유다. 거기서 내가 팔려고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p325 내가 이 일은 하는 이유, 내 목적과 목표는 간단하다. 나는 내 가족을 잘 돌보고 싶다. 이 사회의 생산적인 구성원이 되고 싶다. 내가 가진 기술을 유용하게 써먹고 싶다. 납세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떳떳하게 생활하고 싶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은 쉽지 않았지만 나는 결승점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CEO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미안한 마음을 전혀 가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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