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웃음 나고 사랑스러운 소설이 또 있을까. 한 번 펼치는 순간 손을 뗄 수 없는 <새벽의 모든>은 세오 마이코 작가의 장편 소설이다. 불안감이 안도감으로 변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상상 이상의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 여자, 그 남자의 시선으로 교차되며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각자의 사정을 배려해 주는 것으로 고통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참으로 따뜻했다.
세오 마이코의 장편소설 <새벽의 모든>은 동명의 이름으로 영화화되었으며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다.
목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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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후기
그 여자, 후지사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탐구하는 이는 계속해서 솟아나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구리타 금속>으로 우수관 기와 등 건축자재, 못과 철사 등을 철물점이나 인테리어 업체에 납품하는 곳이다. 사장 구리타 씨, 스미카와 씨, 히사나리 씨, 스즈키 씨, 새로운 직원 야마조에 씨 6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누군가가 미움을 받지도 소외되지도 않는 이상적인 회사에도 주변인의 시선을 ‘늘’ 신경 쓰다 보니 늘 삐걱거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러한 생각을 하는 자신이 지겨웠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다면 분명하게 처신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그러던 중, 그녀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고 생각하기도 전에 지적의 목소리가 나갔다. 명백하게 이상함을 느꼈지만 통제할 수 없었다. 분노를 터뜨리지 않으면 중단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반복되는 증상의 정체는 생리 전증후군, PMS였다. 이 증상에는 다양한 증상이 있었지만 후지사와는 생리하기 전 2-3일 전에 항상 주체할 수 없는 짜증이 밀려오는 증상을 겪는다. 어릴 때부터 시작됐던 PMS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는 사회인이 돼서부터였다. 그 증상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 탓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PMS 전문 의사를 찾아가 본격적으로 약을 복용하게 된다. PMS로 인한 짜증이 드러날까 봐 온갖 신경을 썼지만 ‘짜증’이 아닌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또 다른 실수를 한 것이다. 약을 계속해서 먹을 수 없고 도저히 일을 계속할 수 없었던 후지사와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했지만 자신의 미래가 걱정됐던 불안감에 다시 일자리를 찾게 된다. 자신의 증상을 미리 밝히고 여섯 번째, 구리타 금속에 채용되었다. 하는 일은 단순하지만, 일하는 환경이 최고인 이 직장이 다니게 된 것이다.
p16 자기 마음인데, 자기 마음인데,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 남자, 야마조에.
갑작스러운 사태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2년 전, 10월의 첫 일요일에 겪은 일은 명확히 기억났다. 경험해 본 적 없는 감각에 낯설었고 어떻게 해도 나아지지 않은 상태에 당황했다. 하루빨리 증상이 완화되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렵지만 불안한 상태가 기본이 되어버린 상태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그는 약 처방을 받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나아지기만을 바라야 했다. 스트레스 심하고 정신력이 약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했던 그 공황장애가 나의 일이 되어버렸다. 포기하는 일이 많아졌으며 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병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
P208 나는 나를 죽여버린걸까. 하고싶은 일도 해야할일도 없는 삶은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 아닐까. 이래서는 안된다고 느끼면서도 지금 상황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자기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의도치 않게 후지사와의 PMS로 인해 가까워지게 된다. 아니 정확히는 후지사와가 야마조에의 약통을 발견하여 전해주는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동질감일까. 명백히 다르다고 느꼈던 그 증상은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그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자연스러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타인에게서 항상 불편함을 느꼈던 후지사와가 야마조에 앞에서는 편안하게 행동하는 모습 자체가 뭔가 특별한 관계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보였다.
야마조에는 사소한 일상도 공포의 대상이었던 탓에 무의미한 날을 반복한 적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내 몸을 움직이고 집중하며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랬던 그에게 후지사와가 불쑥 찾아온다. 머리를 잘라준다던가. 부적을 건넨다던가. 영화를 못 보는 대신 <보헤미안 랩소디>의 사운드 트랙을 가져와 같이 음악을 즐기는 사이가 되어간다. 서로의 증상에 대해 알게 된 두 사람은 의도치 않게 마치 정해진 약속처럼 서로를 돕게 된다.
처음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증상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특히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꿈꾸지만 돌아갈 수 없었던 그의 필사적인 말투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익숙하고도 낯선 병명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존재가 되기도 했다. 인정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으나 타인에게 찾아올 어떤 감정을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의 온정이 필요한 지금 가장 필요한 작고 따뜻한 세계를 마주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때론 괜찮다는 말보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상대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게 되는 후지사와, 후지사와를 생각하며 자신의 이동수단을 바꿔보게 된다. ‘나’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는 또 다르게 ‘타인’을 이제는 고려할 수 있는 현재를 마주하게 된다. 그 사소함이 쌓여 편안함이 되어가고 익숙함으로 번져가며 감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소설은 인물의 성장을 그리지만 완벽함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기존의 상태보다는 괜찮아졌지만 완전히 나아지지 않는다. 서로의 도움이 여전히 필요했다. 그래서 더 사랑스러웠다. 소설이 끝나고 계속 펼쳐나갈 현재에서 이뤄나갈 수많은 성취를 기대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두 사람 사이의 티키타카가 굉장히 재미있었던 소설이었다. 생각보다 적대적이었지만 생각보다 활기찬 관계라고 해야 할까. 물론 자신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대로의 자신을 보일 수 있는 상대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만드는 시너지는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어떤 모습을 할지 상당히 기대가 된다.
P293 비관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문어와 나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하지만 후지사와 씨를 좋아할 수는 있습니다.
에?
나 자신을 싫어하지만, 후지사와 씨를 좋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P294 좋아할 수는 있다. 그 말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일까. 그런데 나도 마찬가지다. 야마조에 씨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 게 아니라, 좋아할 수는 있다. 그런 기분이다.
P305 하지만 단순히, 보이고 싶다. 무엇에도 지배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누구에게? 후지사와 씨에게.
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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