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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책 리뷰]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by 인생은 하나의 필름과도 같으니. 2023.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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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가 황모과 작가가 관동대학살 사건을 모티브로 한 타임슬립 역사소설 <말없는 자들의 목소리>이 광복절을 맞아 출간한다. 2023년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가 되는 해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소설이다. 시간에 따라 점점 잊혀가는 사건에 대한 재조명은 묵직한 어조로 진행되며 잊혔던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되살리는 노력을 기울인다. 100년이 지났지만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은 현재의 모습을 역설하듯 책은 그 아픔을 딛고 나아가는 시도를 한다. 잘 알려지지 않는 사건인만큼 사건을 재구성하는 노력을 통해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가 은연중에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이야기는 이렇게도 생생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관동대학살/간토 대학살: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상당한 피해를 입어 혼란을 겪던 일본에서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려 제노사이드 (집단살해)를 일으켜 6천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사건이다.

 

 

목차

프롤로그_2023 간토 카타콤베

1부_1923년 8월 31일 금요일 밤 | 1923년 9월 1일 토요일 | 민호와 다카야의 첫 번째 루프

2부_1923년 3월 말, 부산항 | 1923년 9월 2일 일요일 | 민호와 다카야의 두 번째 루프

3부_1923년 9월 3일 월요일 | 민호와 다카야의 세 번째 루프

4부_1923년 9월 4일 화요일 | 민호와 다카야의 네 번째 루프

에필로그_ 2023 롤백

미주
작가의 말
추천의 말
 

상세이미지

 

책 후기

 

조선 유족 대표 민호와 일본 유족 대표인 다카야는 각자 나라의 대표로 13차 검증단에 임명되었다. 진상규명단으로서 싱크놀로지 채널을 통해 과거의 현장을 관찰하고 1923년의 학살의 진상을 파악하는데 힘쓰게 된다. 두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는 사실 확인을 위해 참여하게 되었지만 그들은 역사에 대한 입장도 전혀 달랐기에 이어지는 그 미묘한 갈등은 서로의 간극을 재확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기록에 의한 사실이 충분히 드러났지만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진다. 과연 과거에 대한 진상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을까.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무한 루프 앞에서 그들이 밝혀낼 그날의 진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들이 루프를 경험하는 동안 계속해서 이어지는 역사 속의 상황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노동은 전적으로 조선인들에게 미뤄졌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살아남기 위해서 노동을 해야 했던 조선인들은 1923년 9월, 대지진이 일본 전역을 덮쳤던 날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물론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은 그 땅에 서있는 모두였지만 일부 일본인들이 그 원망의 화살을 조선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시작하며 조선인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 뿐만 아니라 정부의 가담 하에 자경단 결성과 그에 참여하는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광기 어린 집단 살해를 감행한다. 참여하지 않으면 배제당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들이 판단하기에 조선인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모두 무참히 살해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신뢰보다는 불안으로 점철된 감정들이 일본 전역을 휩쓸고 있었다.
조선인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불안감을 돌리기 위해 조선인에게 책임을 돌리며 혼란을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한 국가와 방관한 국민. 그에 대한 진실보다는 현재의 상황이 더 중요했던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을 선택해 간다. 모두가 학살에 가담한 건 아니었지만 소수에 불과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주변에 의해 묻히고 만다. 그사이 점차 사라지는 죄의식 사이에서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은 반복됐으며 아이들 마저도 당연한 것처럼 학살에 가담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한다. ‘조선인’이 지배될 수 없는 존재라면 사라져야 마땅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퍼진 듯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동조한 집단 대학살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현재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생각보다 더 힘겨웠던 싸움은 여러 형태로 이루어져 아무리 가려도 드러나는 법이다.
한편, 시간이 교차하며 그 시대에 빠져드는 두 사람은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조사에 참여하게 된다. 우익 단체에서 장학금을 받는 다카야를 보고 조건부터 부적합하다고 생각했지만 다카야를 애써 무시한 채, 지금 마주한 과거에 나아간다. 끝나지 않은 비극의 단면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과거의 비극을 막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민호는 눈앞의 과거를 바꾸기로 마음먹는다. 민호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앞에 놓인 학살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다카야는 끊임없이 자신의 조상들이 잘못한 이유를 알 수조차 없었고 그저 민호가 원망스러웠다.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에 민호를 원망하는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 그렇게 루프를 경험하면서도 그저 살아 남기 위해 살아왔지만 살아갈수록 마주하는 것들에서 자신이 외면했던 어떤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진실로 드러나 있는 사실을 회피하기만 했던 일들은 외면한다고 해서 지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만 같았다. 
어떤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게 그려지지만 역사적 사실은 누군가의 주관적인 의견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눈앞의 죽음을 지나칠 수 없는 사람과 참상을 외면하는 사람의 엇갈리는 무한 루프는 원점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된다. 과거에 묻혔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목소리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힘은 여전히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진실을 마주하고 과거의 잘못됨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벌어질 일들은 왠지 모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단지 죽어서 침묵을 유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에 의해 사실이 왜곡되고 그 사실에 대한 진상 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목도한다. 그들의 마주한 상황은 처음의 목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알고 있던 사실이 한층 더 넓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민호가 학살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쉽사리 변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서글퍼지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그 순간에 함께한 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과거의 사람도, 현재의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과거에 놓인 역사를 바라보는 생각 또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제든 재현될 수 있는 학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의 말을 우리가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는 바뀌지 않지만 현재의 생각은 바뀔 수 있다.

 

인상 깊은 구절

 


p68  미호는 사료의 신빙성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다 자주 나가떨어지곤 했다. 증거를 가져오라는 사람일수록 진상을 알고도 외면하거나 보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민호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검증된 증거가 있어야만 증명된다면 100년쯤 지나 생존자들인 모두 사망하고 기억조차 희미해지면 민간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한 일도 없었던 일이 되리라는 기대 섞인 믿음과 닿아 있다. 모두의 기억이 퇴색되어 자신들의 죄악까지 희미해지길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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