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집>은 권비영 작가의 신작 소설이다. 이 책을 처음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권비영 작가의 전작인 <덕혜옹주>가 생각이 난다. 덕혜옹주의 오빠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이은'과 대한제국 마지막 적통 직계손 '이구'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더욱 가깝게 여겨졌다. 독립에 대한 열망, 그리움 그리고 무기력까지 세밀한 감정을 표현한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이지만 미처 몰랐던 부분까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든다. 역사의 초점은 대부분 조선의 독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멸망한 대한제국의 이야기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일어날 어떤 비극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했고 너무 당연하게도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대한제국 마지막 황족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목차
서(序) 제1장
봄날의 기억 / 마사코 / 운명 / 사랑을 품었다가 / 촛불을 흔드는 바람 / 물 위의 도시 / 유럽 여행 / 그럴 수밖에 없었다 / 아카사카, 그 집의 추억
제2장
떠도는 영혼 / 고려신사 / 흐르는 물은 길을 찾는다 / 잃어버린 집 / 그리운 얼굴
제3장
우크라이나 여자 / 아버지 / 조국 / 액자 속에 갇힌 세월 / 그 아이 / 봉사자들 /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 험로 / 또 다른 계절 / 오정수와 해리의 역사 / 줄리아의 편지
결(結)
작가의 말
상세 이미지
책 후기
사랑이라는 이름이 불러오는 마음과 역사에 의한 비극.
조선의 땅을 떠나 몸을 벗어던진 어떤 영혼의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조선의 이야기'.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어떤 기억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치기도 한다. 죽고 나서 알게 되는 명확한 것들을 마주하며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곤 자신의 어머니인 마사코에 대해서 설명한다. 마사코는 일본의 황족으로 인생의 풍파를 몰랐고 밝을 미래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다른 여인들처럼 어느 황족의 아내로서 살아갈 것으로 생각하며 훌륭한 귀부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던 이은과 혼인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신문'으로 접하게 된다. 선택도, 거부도 할 수 없었던 영왕 이은과의 결혼은 일방적으로 일본의 의견에 의해 성사되었지만, 두 나라를 위한 일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두 사람의 선택이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은과 마사코는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은 두 사람이 부부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주었지만, 그로 인해 각자의 생각을 굳게 다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이 혼란스러움을 잠식시키지 않으면 불안감이 번져 불행으로 이어질 것만 같았던 마사코는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고 완전한 아내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한다. 반면, 이은은 착잡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자신의 무력함과 철천지원수인 일본, 일본 여성과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야말로 굴욕적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힘썼던 아버지 앞에 도저히 나설 수 없을 것 같아 더욱 괴로운 마음뿐이었다. 본인을 비롯하여 주위 사람도 괴로운 이 상황이 비극이 아니라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은에게 도피는 유일한 선택지처럼 느껴졌다. 자연스레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두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없는 비극을 마주한다.
국가의 상황과는 달리 개인의 내면은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이은과 마사코는 자신들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던 상황으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웠다. 본연의 모습에 집중하다가도 이따금 찾아오는 현실은 참혹했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도 인간 대 인간으로 함께 하며 느낄 수 있는 사랑에 대한 감정이 피어난다. 그렇게 마사코는 조선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이은은 조선의 독립을 열망했다. 같은 듯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은 다시 서로의 거리를 확인하며 그 순간마다 현실은 계속해서 그들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자각시키곤 했다. 서로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상처 입힌다. 개인적인 감정과는 많이 달랐던 일본에 대한 분노는 조선인이 아닌 이에게는 쉽게 느껴질 수 있는 감정은 아니었으니까.
모든 것이 쉽지 않은 조선에도 독립이 찾아오길 바랐던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미래와 참혹한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목숨을 바칠 정도로 독립을 외치고 자유를 갈망했을까. 태극기의 지대한 물결은 죽음도 두렵지 않을 만큼 서로에게 강렬함을 선사한다. 그렇게 억압을 던지고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은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형식적으로 존재해야 했던 이들은 그 열정에 뛰어들고 싶다가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순응하게 된다. 일반적인 삶을 살아갔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을 겪는 것도 같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자기 내면을 꺼내 보이고 싶은 정도였다. 그토록 바라던 독립은 찾아왔지만, 자신의 공간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던 조선, 그리고 잃어버린 집은 이미 정해진 인연과 운명 그리고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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