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퇴근길>은 한태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평소와 다른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에서 시작된 이 소설은 예상치 못한 반전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남편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는걸까?
남편의 옷에서 발견된 낮에 상영하는 영화표, 칼퇴근, 안 하던 집안일.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수상했다. 처음엔 남편의 수상한 행적을 밝혀내는 와이프의 추적극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종류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바로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남편이 그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상을 유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들킬까 조마조마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가득하고 직장인의 애환이 담겨 있어 보다가 그만 눈물을 흘릴 뻔했다.
고대리는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권고받았지만 사실상 잘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그는 퇴직 소식을 말하려 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 뒤의 일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그 사실을 감추기로 한다. 그래서 평소처럼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보통의 사람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퇴근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야근과 회식이 잦은 터라 아내는 그 모습을 수상하게 여겼지만, 티는 내지 않는다. 이전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서도 점점 동이 나는 통장 잔고에 불안해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말을 해야 이 일에 대해서 상의하고 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무지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이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렇게 회사에 나간 척 밖에서 시간을 때우는 고대리. 그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모든 역할을 다했다고 자부했지만 돌아보면 그것을 핑계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해지면서 동시에 눈물이 났다. 분명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회사에 나가서 돈을 벌었는데, 회사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밥 먹는 시간까지도.
지난날을 떠올려 보니 더더욱 미안해졌다. 하지만 과연 내가 이런 상황에 부닥치지 않았다면 알 수 있었을까? 라고 또 생각해 보기도 했다. 마음으로는 정말 생각하는데 말로는 잘 표현이 되지 않았다. 미운 말이, 분풀이처럼 툭하고 튀어나왔고 후회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사과를 건네는 것도 아니었다.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들은 계속해서 고대리를 맴돌았다. 그 감정을 우연히 알게 된 ‘글 세상’에 털어놓으며 그는 또 다른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끝없는 딜레마에 빠진 고대리는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연락처에는 500개가 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끝끝내 그는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는 되돌아가지 못했지만, 일상의 행복과 여유를 되찾았다. 행복이 거창한 것으로 생각했고,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눈에 담은 수많은 것들이 그를 변화시켰다.
고대리의 말이 다소 찌질하다고 들릴 수 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그런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서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그는 무척이나 열심히 살아왔다.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했으며 그 부담감을 이겨 내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을 인정받기 위해 회사에 헌신했으나 돌아오는 건 희망퇴직이었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할 거라는 그 불안감에 조마조마했던 그에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압박감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간단해서 더욱 써내려 가기가 어려운 소설이었다. 내내 보면서 달라지는 고대리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면서 그를 위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현대인이 가지고 있을 힘듦을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잘 표현했다. 한국인의 당연한 일상이라서 무척이나 서글펐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이 끝나고 나서는 고대리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녀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막말일지 모를 고대리의 말을, 막막한 현실 앞에서 흔들리는 남편을 본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지막 고 대리에게 남긴 편지는 무척이나 따뜻하고 다정했다. 사실을 알아도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그를 감싸안는다. 고대리는 끝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얻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일상, 그리고 그가 진정으로 지키고 싶었던 소중한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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